교육부 “대한민국 수립-정부 수립 모두 허용” 한발 물러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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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교과서 집필기준-국정최종본 공개

 《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수립’이 맞을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맞을까.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던 교육부가 입장을 바꿔 올해 개발되는 검정 역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도 쓸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가 오락가락 방침으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부터 연구학교에서 사용될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에는 친일파의 친일 행위와 일본군 위안부, 제주도4·3사건 등과 관련한 기술이 강화됐다. 과다하다는 지적도 받았던 박정희 정권과 관련된 서술 분량은 줄지 않았지만 새마을운동의 한계점에 대한 서술이 추가됐다. 》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 직원이 이날 공개된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을 가리키고 있다.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현장 검토본 내용대로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확정했다. 세종=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 직원이 이날 공개된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을 가리키고 있다.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현장 검토본 내용대로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확정했다. 세종=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올해 개발되는 검정 역사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에는 수정 요구가 많았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나 박정희 정권의 서술 분량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일본군 위안부, 친일파의 친일 행위, 제주도4·3사건 등과 관련된 기술을 강화했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의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과 국정 역사 교과서 최종본을 31일 공개했다.

○ 한발 물러선 검정 집필 기준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의 가이드라인이 될 집필 기준은 대한민국 건국 시기 표현을 두고 국정 교과서의 편찬 기준과 달라졌다.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는 내용은 유지하면서도 집필 유의점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에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 유의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에 따라 검정 교과서에서는 두 가지 표현을 모두 사용하거나 한 가지를 골라 기술할 수 있게 됐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31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도 가능하도록 했다”며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는 점이 기술된다면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국정 교과서 반대 진영을 고려한 결정이다.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게 돼 있어 국정 교과서의 표현을 수정하기 어렵다던 교육부가 검정 교과서는 교육과정 개정 없이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쓸 수 있게 한 것은 교육과정을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부를 대목이다.

 이 밖에 ‘중학교 역사②’ 집필 기준에 광복 후 친일 청산 노력에 대한 서술 근거를 명시했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제주도4·3사건 서술을 한층 구체화하도록 집필 기준에 제시했고, 새마을운동의 장점만 부각시켰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도 담도록 했다. 교육부는 8월까지 검정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한 뒤 검정 심사를 거쳐 올해 말에는 최종본을 완성해 공개할 계획이다.

○ 최종본 ‘대한민국 수립’은 그대로

 국사편찬위원회와 집필진은 지난해 11월 28일 현장 검토본 공개 이후 수렴된 의견 중 교육과정과 학문적 타당성 등을 검토해 중학교 역사 310건, 고교 한국사 450건 등 총 760건을 최종본에 반영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사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집단 학살 사례를 본문에 추가하는 등 관련 서술을 강화했다. 또 김구 선생 암살 사실을 추가하고 제주도4·3사건 관련 오류를 정정했다. 광복 이후 추진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의 한계를 더 명확히 기술했다.

 하지만 가장 논란이 컸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수정하지 않았고, 많은 분량이 할애됐다는 지적을 받은 박정희 정권의 서술도 줄이지 않았다. 다만 새마을운동이 ‘관 주도의 의식 개혁운동’으로 전개됐다는 한계점을 추가했다.

 교육부는 추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부터 검정 교과서와 함께 사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17개 시도 교육청 중 9개 교육청은 연구학교 관련 공문조차 학교로 보내지 않는 등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있어 연구학교 지정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본이 공개되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의원들은 “국민 11만 명의 국정 교과서 반대 의견이 제출됐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정’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의 뜻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했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교육부는 교육과 학교 현장에 혼란을 만들지 말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 편찬심의위원 12명의 명단도 이날 공개했다.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위원장)을 비롯해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강규형 명지대 교수 등 역사학자 교수 교사 학부모 등이 편찬심의위원에 포함됐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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