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따로 또 같이’… 21세기형 가족의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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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벨라 드파울루 지음/박지훈 옮김/392쪽·1만6000원/알에이치코리아

한 부지에 두 채 이상의 별도 생활공간을 둔 미국의 듀플렉스 주거지. 가족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한 부지에 두 채 이상의 별도 생활공간을 둔 미국의 듀플렉스 주거지. 가족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미국 드라마 ‘프렌즈’가 생각났다. 전통적인 가족을 대체한 21세기형 공동체를 소개하는 책 내용이 드라마의 구성과 일맥상통한 때문이다. 1994∼2004년 10년간 방영된 프렌즈는 마지막 방송이 미국 전역에서 야외 전광판으로 생방송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뉴욕에 사는 젊은 남녀 주인공 6명은 한 아파트에 나란히 사는데, 노크도 없이 불쑥 다른 친구의 방에 들어가는 게 어색하지 않다(물론 샤워실은 예외다). 휴일 아침 식사를 거실에서 늘 함께하고 근처 단골 커피숍에서 매일같이 수다를 떤다. 사실상 가족 같은 친구들인 것이다. 세기말부터 금세기 초까지 이 드라마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가족 관계의 불가피한 의무나 ‘구질구질’함이 아닌 새로운 공동체에서 자유와 ‘쿨’함을 매력적으로 느낀 것 같다.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현대 미국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땅콩집처럼 하나의 부지에 여러 채의 독립된 생활공간을 짓는 ‘듀플렉스’ 공동체나 인터넷을 통해 만나서 공동 육아를 실현한 싱글맘 공동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동시에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소통을 추구한다. 저자는 “이젠 나만의 공간과 가족을 스스로 설계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가족 공동체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장성한 아들이나 딸이 부모와 함께 사는 이른바 ‘캥거루’ 가족이 최근 미국에서도 늘고 있는 추세다. 저자는 자녀들이 경제위기로 인해 부모에게 기댄다는 식의 부정적인 의미로 보지 않는다. 물론 주거비 절약 같은 경제적 유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보다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갈등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데 주목한다. 히피로 대표되는 저항과 ‘이유 없는 반항’ 아이콘이 유행하던 1960, 70년대와 달리 지금은 세대 간의 정서나 공감대가 큰 충돌을 빚고 있지 않다는 거다.

 공동체 삶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는 역시 ‘프라이버시’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엄격한 삶을 추구하던 100년 전통의 이스라엘 키부츠도 최근 사유재산과 사생활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이 가족공동체의 공간 점유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따로 함께 살아가는 커플’(LAT·Living Apart Together)일 것이다.

 책에는 주말부부도 아니면서 별도 집에서 각자 생활하는 부부들이 소개된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독립된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길 강력히 원한다. 혹자는 이기심 혹은 미성숙한 사랑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파트너의 삶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게 성격 차이 운운하며 이혼 도장을 찍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오랜 추억이 담긴 자신만의 집을 포기할 수 없어 LAT를 선택한 노년 커플들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벨라 드파울루#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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