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상위 0.1%… 미국판 ‘강남 엄마’ 생태 관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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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애비뉴의 영장류/웬즈데이 마틴 지음/신선해 옮김/372쪽·1만4000원/사회평론

맨해튼 최상류층 가정에 취업한 보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내니 다이어리’. 뉴욕 최상류층 가정의 보모는 연봉이 1억2000만 원을 넘고, 엄마들은 살림과 아이 돌보기 등을 통해 영향력을 갖게 된 보모들과 자주 기 싸움을 벌이며 속을 끓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아일보DB
맨해튼 최상류층 가정에 취업한 보모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내니 다이어리’. 뉴욕 최상류층 가정의 보모는 연봉이 1억2000만 원을 넘고, 엄마들은 살림과 아이 돌보기 등을 통해 영향력을 갖게 된 보모들과 자주 기 싸움을 벌이며 속을 끓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아일보DB
 아파트 구매 신청서에 부부의 대학 성적은 물론이고 부부와 그들의 부모, 아이들이 다닌 학교까지 모조리 적어 넣고, 입주민 대표들과 면접도 봤다. 두 살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에세이를 쓰고, 장난감 하나 달랑 있는 방에 아이들을 오래 둔 채 스트레스 반응을 확인하는 면접도 치러야 했다.

 미국 최상류층이 사는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파크애비뉴에서 저자가 겪은 일이다. 예일대에서 문화연구와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작가로 활동하는 저자는 뉴욕 다운타운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9·11테러가 터지자 안전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크애비뉴의 독특한 생태계를 목격한 저자는 인류학자가 원숭이, 침팬지, 열대우림의 부족을 관찰하듯 6년간 엄마들을 지켜보고 차츰 동화(同化)됐던 경험을 정리했다.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최상류층의 생활을 인간 이외 영장류나 조류 등의 행태와 연결시켜 분석한 방식은 신선하다. 때때로 웃음이 터진다. 

 저자는 가까스로 아들을 좋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 성공하지만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한다. 반전은 예상치 못한 데서 일어났다. ‘반장 엄마’가 마련한 칵테일파티에서 맨해튼 금융계의 거물인 ‘우두머리 수컷’과 저자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저자의 아들을 놀이모임에 초대한 것이다! 이후 다른 엄마들은 급속히 상냥하게 굴며 놀이 약속을 청해 왔다. 

 한정 생산돼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든 에르메스 버킨백을 구입하려 저자가 친구의 어머니에게 읍소하고 아시아로 출장 간 남편을 닦달해 기어코 가방을 손에 넣는 장면은 한 편의 희극 같다. 이유는 있다. 저자가 바나나, 우유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길을 걷다 비싼 핸드백을 든 여성이 곧장 돌진해 가방으로 왼팔을 치며 비웃음을 날리는 바람에 얼어붙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서열이 아래인 여성을 기선 제압하는 이곳 여성 특유의 행동이다). 버킨백은 자신을 보호해 줄 ‘부적’이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와 몸매 관리, 패션에만 연간 1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엄마들은 신선놀음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신경안정제와 술을 달고 산다. 다이어트와 운동에 매달려 늘 허기져 있고, 돈줄을 쥔 남편에게 이혼 당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건 공포 그 자체다. 그들 세계에서 규정한 완벽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기에. 운동 경기 중 아이가 넘어져 치아 하나가 까맣게 변색되자 한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강남 엄마들이 떠오른다.  

 경쟁심과 질투심, 비굴함과 오만함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이들에게도 뜻밖의 모습이 있었다. 셋째 아이를 임신한 저자가 6개월 차에 유산한 후 고통스러워하자 평소 말도 섞지 않고 e메일, 문자도 한결같이 ‘씹던’ 엄마들이 먼저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 그들은 유산하거나 사고로 아이를 잃은 경험을 털어놓으며 저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같이 아파했다. 별난 종족일 뿐이라 여겼던 그들도 결국 어미였던 것이다.

 맨해튼 상류층 청춘들의 화려하고도 속물적인 삶을 그린 미드 ‘가십걸’의 ‘엄마 버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최상류층이 애용하는 패션·디저트 브랜드, 피트니스센터, 휴양지를 알아가는 재미는 덤이다. 원제는 ‘Primates of Park Avenue’.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파크애비뉴의 영장류#웬즈데이 마틴#미국판 강남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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