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무너지는 가족-암울한 미래 속 ‘나’라는 존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무도 아닌/황정은 지음/216쪽·1만2000원/문학동네

 낯선 소설집이다. 책날개에는 흔한 경력 하나 없이 작가의 이름과 사진만 실렸다. 소설집에 으레 실리는 작품 해설도 없이 단편소설 8편만 묶였다. 작가 황정은 씨는 한국 문단의 든든한 허리다. 최근 수년간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작가가 반려했다)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문단은 그에게 주목했다.

 ‘상류엔 맹금류’는 옛 연인 제희와 그의 부모와 함께 수목원으로 나들이를 갔던 일을 회상하는 화자의 이야기다. 사랑이 없었던 가정에서 자라난 ‘나’는 가난하지만 다정해 보이는 제희의 가족들이 부럽다. 그러나 제희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한쪽 폐를 들어낸 뒤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어머니와 누나들이 아버지 뒷바라지로 지쳐가면서, 다감했던 가정은 서서히 무너진다. 제희의 부모가 느닷없이 제안해 제희와 화자가 동행한 수목원 나들이는 그 절정이다. 제희 어머니는 “생일이라고 빵 한 덩어리 받은 적 없다”며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멋쩍게 웃기도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은 게 없다.

 황정은 씨는 실제적 빈곤의 문제를 공포에 가까운 감성과 교직해 낸다. ‘상류엔 맹금류’에서 제희의 부모는 큰 빚을 지고도 도망가는 대신 가족이 다 함께 가난을 나누기를 택하고 가족의 정으로 어려움을 보듬으려 하지만 경제적 근심도, 그로 인한 마음의 고통도 어느 것 하나 극복할 수가 없다. ‘양의 미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하에 있는 서점에서 근근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화자의 나날들을 그린 작품이다. 황 씨는 화자가 실종돼 버린 소녀에 대한 목격담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게 함으로써 미래가 없는 화자의 삶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도 아닌’이라는 황 씨 소설집의 제목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린 작품마다 깃든 절실한 집요함에서 이런 작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아무도 아닌#황정은#상류엔 맹금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