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거국내각 할 바엔 탄핵절차 밟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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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식 거국내각은 대통령 허수아비 만들고 야당이 통치권 가져가는 것
사실상 하야 요구나 다름없어
그럴 바엔 박 대통령 탄핵하든가 탄핵할 수 없으면 권한 인정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대통령은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임 중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위법 행위에 연루됐는데 가만둘 수는 없다. 그 위법 행위가 대통령의 정당성을 심각히 훼손한 경우 헌법이 예정한 절차가 탄핵이다. 대통령을 기소해서 처벌하는 것은 재임 후에 하더라도 당장은 대통령직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이 정치의 세월호 사태를 빚었다. 또 다른 독단을 막기 위한 청와대참모와 내각의 인적 쇄신은 꼭 필요한 조치이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최순실이라는 비선은 김현철이라는 비선과는 다르다. 김현철의 비선 활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묵인이 아니라 무지 아래서 이뤄졌다. 최순실의 비선 활동은 박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됐다. 참모와 각료들이 최순실의 비선활동을 알았다 한들 대통령이 허용하거나 묵인한 비선활동을 어떻게 하겠는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수사가 대통령 주변 인물만 기소하고 마는 수사라면 의미가 없다. 수사가 의미가 있으려면 최종적 책임자인 대통령을 향해야 한다. 대통령을 강제 수사할 순 없지만 임의수사나 주변인을 통한 간접수사는 할 수 있다.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없으므로 수사 결과는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근거는 되지 못하지만 탄핵 소추할 근거는 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대통령은 총리에게 국정의 전권을 주고,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며 “새 총리의 제청으로 새 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야권에 권력을 이양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로 헌법의 근거 없이 통치권을 가져가겠다는 발상이다. 대통령에게 하야란 말만 안 했지 하야 주장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의 거국내각으로 허수아비 신세가 된 대통령을 둬서 뭣하겠는가. 그럴 바엔 탄핵절차를 거쳐 새 대통령을 뽑는 게 낫다.

 국민은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함부로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정말 크다면 정치권은 그 목소리를 헌법에 맞게 탄핵절차로 소화해야 한다. 탄핵절차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민주당의 주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그런 억지를 부렸다. 탄핵이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탄핵을 건너뛰어 대통령에게 사실상 하야나 다름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새누리당도 탄핵을 금기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모 아니면 도인 탄핵절차에 이르기 전에 다양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이 실패할 경우 결국 탄핵절차에 이를 수밖에 없다. 탄핵절차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현 대통령을 쫓아내 새 대통령을 뽑는 길을 열고, 다른 한편으로는 탄핵에 이르지 못할 경우 현 대통령에게 다시 정당성을 부여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탄핵 소추된 뒤 탄핵이 예상되자 표결 전에 사임했다. 반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인턴과의 부적절한 성관계로 탄핵 소추됐으나 탄핵을 모면하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도 탄핵을 모면하고 임기를 마쳤다. 민주당이 사실상 하야 요구를 하면서 탄핵을 입밖에 올리지 못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탄핵절차가 노 전 대통령에게처럼 박 대통령에게도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인한 국정 혼란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당시 고건 총리가 성공적으로 대리 대통령 임무를 수행했다. 책임총리, 책임총리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책임총리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암살된 뒤 집권한 부통령이 거의 대부분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다만 박 대통령을 탄핵절차에 부치기로 한다면 탄핵 소추가 될 때까지는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제에 걸맞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은 그 사이 냉각기를 갖고 어디까지가 불법적 국정 농단이고 어디까지가 정상적 국정 수행인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여야가 해결책을 찾으면 가장 좋다. 다만 반(反)헌법적 거국내각 구성을 할 바에야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낫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내각#문재인#박근혜#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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