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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피부색-가난이 죄가 되는 法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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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피부색-가난이 죄가 되는 法에 맞서다

조종엽기자 입력 2016-10-29 03:00수정 2016-10-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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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브라이언 스티븐슨 지음/고기탁 옮김·504쪽/1만7000원·열린책들
미국에서 사회적 약자를 무료로 변호해 온 저자 브라이언 스티븐슨(위)은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무고한 흑인을 변호한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와 닮았다. 오른쪽 사진은 ‘앵무새 죽이기’를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의 한 장면. 열린책들 제공
 성명(인종): 월터 맥밀런(흑인)

 혐의: 1986년 11월 1일 백인 여성 론다 모리슨 살해

 증거: “월터가 ‘내가 죽였다’고 했다”는 랠프 마이어스의 증언. (월터와 랠프는 모르는 사이이고, 랠프는 다른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

 반론: 론다 모리슨이 살해된 날 월터와 가족들은 하루 내내 사건 장소와 수km 떨어진 집에서 ‘피시 프라이’(가족이나 사회단체 구성원들이 생선 위주의 음식을 팔며 기금을 모으는 행사)를 하며 행인들에게 음식을 팔았음. 교회 교인 10여 명이 함께 집에 있었음. 월터는 친구와 트럭을 고치기도 했음. 증인 수십 명. 거기서 음식을 산 경찰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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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심원단 판결: 월터는 유죄. 종신형. 나중에라도 가석방 안 됨.

 판사: 약해. 사형시켜! 땅땅땅.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1987년 벌어진 재판이다. 검찰과 경찰은 월터를 살인자로 몰아간다. 믿기 어려운 증언을 바탕으로 월터를 일단 별건인 동성애 혐의로 체포한다. 이후 구치소가 아닌 사형수들이 수용되는 건물에 수감시켜 육체적,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판사는 흑인이 많은 동네들이 거의 대부분임에도 백인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재판 장소를 옮겨버린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모두 백인이 됐다. “무고한 흑인을 사형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책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월터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인 사건이 나기 이전 한 백인 유부녀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펄프 사업을 하는 월터가 그 여성과 바람을 피웠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게 지역 사회 백인들을 자극했다. 앨라배마를 비롯한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과 섹스를 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정만으로도 흑인 남성 수백 명이 린치를 당한 역사가 있었다. 앨라배마 주는 1986년까지도 흑인과 백인 간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다.

 책의 저자는 월터의 억울한 사연을 접하고 월터가 6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월터의 편에 선 흑인 변호사다. 저자는 1989년 비영리 법률 사무소인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빈곤층 흑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무료로 변호해 왔다.

 월터 사건뿐 아니다. 엄마를 폭행하는 동거남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한 14세 소년, 사산을 한 뒤 영아 살인으로 기소당해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빈곤층 여성 등을 변호한 이야기 등 저자의 30년이 책에 담겼다.

 억울하게 살인 혐의를 받던 의뢰인이 결국 사형을 당하자 저자도 회의에 빠진다. 저자는 자신이 불우한 환경, 장애, 빈곤 때문에 망가진 이들을 변호하는 이유가 자신 역시 ‘망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도는 제각각이라도 인간은 모두 완전치 않은 존재이고, 그래서 의뢰인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2년 ‘테드(TED·미국의 짧은 공개 지식 강연)’에서 ‘우리는 불의에 관해 말해야 합니다’라는 연설로 테드 역사상 가장 긴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사형수, 재소자와 가까이 지낸 저자는 책에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최악의 행동보다 나은 존재”라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모른 체하면 결국 그 영향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브라이언 스티븐슨#흑인#사형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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