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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 알고보니 내가 일해준 거네, 공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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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 알고보니 내가 일해준 거네, 공짜로”

손효림기자 입력 2016-10-29 03:00수정 2016-10-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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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의 역습/크레이그 램버트 지음/이현주 옮김·336쪽/1만6000원·민음사
셀프 주유, 가구 조립뿐 아니라 출퇴근에 들이는 노력 역시 대가 없이 일하는 그림자 노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짙은 그림자로 뒤덮인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그린 ‘비엔나의 프라이융 남동부 풍경’(카날레토 그림). 동아일보DB
 커피숍에서 다 마신 음료잔을 치우고,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기기를 통해 주문하고 결제까지 마친 뒤 음식을 받는다. 공항에서는 자동화 기기로 탑승권을 출력한 뒤 짐만 항공사 직원을 통해 부친다.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업의 직원이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이를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가 임금에 기초한 경제에서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른 데서 따왔다. 저자는 그림자 노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론이고 사회 구조에 미치는 파장을 함께 짚어낸다.

 저자는 현대인이 점점 바빠지는 데는 그림자 노동이 한몫을 단단히 한다고 주장한다. 은행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대형마트 무인 계산대에서 결제하는 사례를 떠올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계치인 기자는 이런 일에 시간이 꽤 많이 걸리고 종종 상당한 참을성을 요구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쇼핑이나 인터넷 뱅킹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피하려 애쓰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림자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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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례도 눈에 띈다. 제주도에 있는 ‘노을 언덕’이라는 무인 카페에서는 직접 커피나 차를 타고, 간단한 식사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식기도 닦아야 한단다. 음료 가격은 2∼3달러(약 2300∼3450원)에 불과하다. 기차역에도 승무원이 줄었다.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는 것은 이제 사치가 돼버렸다는 서글픈 분석에 200%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인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노인들은 기계의 장벽에 가로막히게 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자 노동은 실업과 과로라는 양극단의 문제를 초래한다. 그림자극과 교향악을 결합한 연주회. 동아일보DB
 그림자 노동은 개인의 시간을 빼앗는 데 그치지 않고 일자리도 위협한다. 사람이 사라지고 기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항공권, 호텔, 일정을 고를 수 있는 인터넷 여행 사이트의 증가로 1996년 3만3715개였던 미국의 여행사 수는 2010년 1만5564개로 절반 넘게 줄었다. 젊은이들은 그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15∼24세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인 데 비해 실업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이른다.

 회사에서 업무량이 늘었는데도 월급은 제자리라면 역시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줄였거나, 일이 늘었는데도 고용을 더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페이스북에 정보를 올리는 건 즐기기 위한 경우가 많지만 페이스북이 데이터를 활용해 광고를 유치하는 순간 이런 활동은 그림자 노동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단다. 돈을 내지 않고 무언가를 이용하고 있다면 당신이 바로 그 상품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그림자 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대가 없는 노동의 구체적 사례와 그에 따른 결과를 인식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준다. 더불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와 불필요한 일을 줄여 나갈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대는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그림자 노동의 역습#크레이그 램버트#그림자 노동#자동화 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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