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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의 人]“규모 7.3 지진에도… ‘오모테나시’는 무너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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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의 人]“규모 7.3 지진에도… ‘오모테나시’는 무너지지 않아요”

심규선 대기자 입력 2016-09-10 03:00수정 2016-09-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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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후 5개월… 日 구마모토-오이타 사람들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 현 지사가 인터뷰가 끝날 무렵 “모처럼 오셨으니…”라며 현의 마스코트인 구마몽을 깜짝 등장시켰다. 구마몽은 연간 1000억 엔의 매출을 올리는 능력 있는 ‘영업부장’. 지진으로 활동을 못하자 전 세계에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쇄도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구마모토=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심규선 대기자
커다란 재난이 발생하면 세 가지 생(生)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단기적으로는 생명(生命), 중기적으로는 생활(生活), 장기적으로는 생업(生業)이다. 올 4월 일본 규슈(九州)의 구마모토(熊本) 현과 오이타(大分) 현에서 발생했던 ‘구마모토 대지진’도 그 길을 걷고 있다.

4월 14일과 16일 리히터 규모 7.3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한 것은 지진 많은 일본에서도 처음. 그러나 초동대처를 잘한 덕분에 인명피해가 적었다는 게 현지의 평이다. 구마모토 현청에 따르면 9월 8일 현재 사망자는 관련사(關聯死)를 포함해 111명이고, 물적 피해는 최대 4조6000억 엔으로 추산된다(구마모토의 피해가 80% 정도).

다음은 생활. 지진 발생 시 구마모토 현에서만 16만 채의 가옥이 파손되고, 현민 180만 명 중 한때 18만여 명이 피난생활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설주택 4157채를 짓고, 민간주택 8000여 채를 빌려 제공함으로써 이재민들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문제는 생업이다. 구마모토 경제는 관광과 농림수산업, 중소기업이 지탱해왔다. 관광은 외국에서 손님이 오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지진 이후 규슈 지역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지난해 규슈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283만 명 중 1위는 38%의 한국인이었다. 그러니 구마모토와 오이타 현이 한국인이 다시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1일부터 사흘간 두 현에서 지진 복구와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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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의 3대 원칙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최소화할 것, 그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복구를 지향할 것, 그래서 현의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게 할 것을 내세우고 있다.”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69) 구마모토 지사의 입에서 ‘창조적’ ‘새로운 발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복구도 힘든 판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다른 곳에서 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들으면서 납득했다. 그들은 정말로 쓰러진 집과 건물을 치우고, 그 위에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가바시마 지사는 “이번 지진은 강한 전진(前震)과 더 강한 본진(本震)이 연달아 오고, 여진도 2000여 차례나 계속되는 바람에 대처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중앙정부와의 협조는 잘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 예로 정부가 지진 다음 날 중앙부처 고위 관료를 구마모토에 파견하고, 자위대가 곧바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으며, 구호물자는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공세적으로 지원하고(푸시형 지원), 한 달 만에 복구비로 7000억 엔을 배정한 것 등을 들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는 매뉴얼의 노예였던 일본이 임기응변의 일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주목할 만한 것은 ‘규슈 부흥 할인’이라는 독특한 관광진흥책. 7∼9월에 규슈 지방을 여행하면 최대 70%, 10∼12월에는 최대 50%의 숙박비를 깎아주는 제도다. 깎아준 돈은 모두 국가 예산(180억 엔)으로 메워준다. 규슈 지방의 관광지들은 이 제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러나 가바시마 지사는 “이는 어디까지나 앰풀 주사(응급처치)에 불과하고, 결국에는 자력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마모토를 돕는 방법 중 하나는 여행을 오는 것이다. 예전 이상의 ‘오모테나시(진심을 담은 대접)’로 잘 모시겠으니 구마모토가 건강하다는 것을 한국에 널리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오모테나시’는 일본 관광의 강점을 상징하는 단어로, 국제사회에서 번역하지 않고도 통하기 시작한 단어다.

구마모토 현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마시키(益城) 정. 21명이나 숨졌고 전체 가옥의 97%인 1만177채가 전파, 반파, 일부 피해를 보았다. 니시무라 히로노리(西村博則·60) 정장(町長)도 “동일본 대지진 때보다 대처와 복구가 빠르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복구에 3년, 재생에 4년을 잡고, 그 이후에는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오이타 현의 대표적 온천마을인 벳푸(別府) 시의 나가노 야스히로(長野恭紘) 시장도 한국인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41세의 초선 시장은 열정적이었다.

“5월 골든위크 때 벳푸시내에서 11만 명, 규슈 전체에서 70만 명이 숙박 예약을 취소했다. 나는 벳푸를 아시아 제일의 스파 리조트로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됐으나, 방재에 가장 강한 마을을 만들겠다. 벳푸를 방문하는 외국인 중 55% 정도가 한국인인데, 아직도 반밖에 안 오는 것 같다. 벳푸는 손님이 와야 의미가 있는 마을이다.”

지사, 시장, 정장님들은 그렇다 치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번 지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일본 3대 성의 하나로 구마모토의 심벌이자 관광의 핵인 구마모토 성도 이번 지진에 큰 피해를 보았다. 아베 신조 총리가 “구마모토 성의 복원이 끝나지 않는 한 구마모토 지진의 복구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할 만큼 이 성은 특별한 존재다. 구마모토 성 조사연구센터의 쓰루시마 도시히코(鶴嶋俊彦·62) 씨. 그가 “20년에 걸쳐 복원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는 ‘20년’에 놀랐는데 그 다음 말이 더 관심을 끌었다. “수리 과정을 모두 공개할 것입니다.”

구마모토 성과 함께 구마모토 현의 2대 심벌인 아소산(阿蘇山)으로 향하는 도로는 막혔고, 아소신사(阿蘇神社)도 본전이 무너지는 등 복구에 7, 8년이 걸리는 큰 피해를 당했다. 아소신사의 이케우라 히데타카(池浦秀隆·44) 스님은 “아소신사를 문화 복원의 사례로 주목하고 있어 복구과정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똑같은 두 사례를 보며 무슨 일만 있으면 푸른 시트로 가리기에 바빴던 일본이 정말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동적인 스토리는 그 밖에도 많다. 왜 있잖은가. 평범한 사람들이 주는 잔잔한 울림 같은 것 말이다.

마시키 정에서 한국식 김치공장인 ‘김치의 고향’을 대를 이어 운영하던 요시하라식품의 사장 요시하라 노리유키(吉原憲幸·54) 씨. 공장이 반파되고 주문마저 끊기자 직원 20명을 모두 해고했다. “전망도 없이 오기로 공장을 계속 운영하다가는 직원들을 더 거지로 만들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다음에 있었다. “쓰케모노(절임반찬) 만드는 일만큼은 정말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최근 주문이 조금 회복되자 해고한 직원 중 절반이 돌아와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오로지 경영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미나미아소(南阿蘇) 촌의 숙박형 건강테마파크 ‘아소 팜랜드’는 새로운 시도로 관심을 끌었다. 지진으로 파크 내 시설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사회공헌 차원에서 이재민들에게 돔형의 숙박시설을 곧바로 개방했다. 사기업이 이재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재민은 한때 650명까지 됐으나 요즘은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오이타 현의 또 다른 유명 온천마을 유후인(由布院)에서 고급 료칸을 경영하는 나카야 겐타로(中谷健太郞·82) 씨의 말은 철학적이다. 그는 “마을이 너무 유명해져서 앞사람의 발꿈치를 밟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 원치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지진은 신이 준 여유”라고 했다. 그는 50년 전 영화 촬영감독의 꿈을 접고 유후인으로 돌아와 마을의 개념을 체류형 슬로시티로 잡고, 그것을 관철해 성공시킨 이 마을의 설계자이자 리더다. 일찌감치 미래를 내다본 그의 말에는, 그래서 무게가 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남는 말들도 소개하고 싶다.

‘아소 팜랜드’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이치하라 히데시(市原秀志·61) 요시에(よし江·58) 씨 부부. 이달 중순에 입주할 가설주택이 좁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 5명(아들 부부와 손자 포함)이 다치지도 않고, 병원에도 안 갔으면 됐지, 지금 무슨 호강을 원하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한국이 떠오른 건 왜일까.

전국적으로 유명한 구마모토 현의 구로카와(黑川) 온천의 시모조 다카히로(下城譽裕·45) 관광료칸협동조합 이사. 손님이 많거나 적은 료칸들 사이에 갈등은 없느냐고 물었다. “없다. 구로카와 온천이 스타트할 때는 정말로 가난했다. 지금은 전부 좋아졌지 않으냐.”

벳푸 시에서 효탄온천을 운영하고 있는 고노 준이치(河野純一·66) 씨. “2007년 처음 나온 미슐랭 관광가이드북 일본판에서 첫해부터 내리 5년간 별 셋을 얻었다. 엄청난 영광이지만 팸플릿에 ‘미’자도 넣지 않고 있다. 손님들의 기대만 높여놓고 서비스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별 셋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지진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스피드를 중시하면서도(速), 멀리 내다보고(遠), 조급해하지 않는(安), 즉 ‘速遠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기란 무서운 것을 무섭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취재 과정에서 여러 번 들은 농담이 떠오른다. “혹시 오늘 운이 좋으면 약한 지진이라도 만날지 모릅니다.” 지진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두려움을 넘어섰다는 뜻이리라. 그런 사람들이 ‘오모테나시’의 마음으로 한국인을 기다린다고 하니, 한번 가보시는 것은 어떨지.―구마모토·오이타에서
 

▼2300년전 벼농사 전해주고… 임진왜란때 끌려간 도공들 정착▼
 
한국과 특별한 인연 이어진 규슈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썼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수긍하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년)

저자가 말한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는 일본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바로 규슈(九州)다. 그래서 규슈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장소가 상당히 많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네 권을 쓰며 첫 권을 규슈로 잡고 ‘빛은 한반도로부터’라고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창비, 2013년).

유 교수가 한일교류사의 첫 페이지로 소개하는 곳이 사가(佐賀) 현의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유적지다. 2300년 전 고조선과 삼한 시대 사람들이 집단 이동해 청동기문명과 벼농사를 전해줌으로써 일본 열도에 야요이(彌生) 시대를 열게 한 현장이라는 것이다. 사가 현 앞바다 가카라지마(加唐島)에는 백제 무령왕이 태어났다는 장소가 있고, 후쿠오카(福岡) 현 다자이후(太宰府) 근처에는 나당연합군에 패한 뒤 집단 망명한 백제 귀족과 백성들이 쌓은 수성(水城)과 산성 등도 남아 있다. 미야자키(宮崎) 현 난고(南鄕) 촌은 백제 멸망 후 이곳에 온 백제 후손들이 1300년이나 이어오고 있다는 축제로 유명하다.

규슈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붙잡혀온 도공들이 꽃피운 도자기 문화다. 일본 자기의 시조라고 해서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이삼평의 아리타(有田)를 비롯해 가라쓰(唐津), 이마리(伊萬里), 미야마(美山·사쓰마야키) 등에서 조선도공들이 가마를 열었고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가 현 바닷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로 급조한 ‘히젠 나고야 성’의 성터도 남아 있다. 2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제주 올레길을 본떠 만든 규슈 올레길 리본을 발견하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규슈에는 지금 17개의 올레길이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더 큰 유대도 있다. 오늘날의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과 일본 원주민이 반복적인 혼혈을 거듭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점차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혼혈’이 시작된 무대가 규슈다. 그래 그런지 규슈의 식자들을 만나면 농반진반으로 “일본 어느 지역보다 규슈 사람들이 한국에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글쎄, 우리말로 하면 핏줄이 당긴다는 뜻일까.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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