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톡톡]자연사랑이 여물 때 비건의 경지로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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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채식이 ‘건강을 지키는 자연식’으로 알려지면서 채식 인구와 전문식당이 늘고 있습니다. 건강, 윤리 등 여러 이유로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은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죠. 일상생활까지 바꿔 놓는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동기는 제각각

 
“2년 전 수술을 하고 갑상샘 기능이 저하돼 매일 아침 호르몬 약을 먹어요. 그런 뒤 몸이 많이 부어서 체중이 수술하기 전보다 10kg 늘었어요. 최근 의사 선생님이 권해 채식을 시작했는데, 부기도 내리고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박은선 씨(44·회사원)

“작년 6월 말 해부학 수업을 들으면서 채식을 시작했어요. 개 해부를 하거든요. 교수님이 우스갯소리로 ‘이게 너희가 좋아하는 ○○○살이지’라고 알려주시곤 해요. 고기를 보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이건 어떤 돼지의 다리 근육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전수진 씨(23·대학생)

“도축의 실상을 알게 되고 나서는 고기를 먹기엔 제 마음이 편하지가 않더라고요. 마음 편하자고 했을 뿐이에요.”―황재선 씨(37·회사원)

“몇 년 전 동물사랑 콘서트에 스태프로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처음엔 정말 놀랐어요. 그런데 함께 밥을 먹으러 다녀 보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채식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어요.”―손민채 씨(33·법무법인 직원)

“처음엔 멋있어 보여 시작했어요. 신념을 지켜간다는 게 멋져 보이고, 막연히 몸에 좋을 것 같았죠. 확실한 동기가 없다 보니 한 달 만에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그런 뒤에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알고서야 채식을 지속할 수 있었죠.”―박지민 씨(23·고려대 채식주의 소모임 ‘뿌리:침’ 대표)

“공식적인 채식 관련 통계는 없어요. 국내 채식 인구가 전체 인구의 2%, 채식 선호 인구는 25% 정도 되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채식 레스토랑도 5년 전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나 300곳 정도가 있는 걸로 추정해요. 채식도 실용적 채식과 윤리적 채식, 종교적 채식으로 나뉘는데, 젊은층에서 윤리적 채식이 늘고 있어요.”―이원복 씨(52·한국채식연합 대표)
 
맛있어서 행복해요
 
“체구가 작아서, 괜히 채식을 하면 체력이 약하다는 인식을 줄까 봐 걱정됐어요. 야근도 마다 않고 솔선수범하고, 마라톤대회도 나갔죠.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어 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이예슬 씨(30·약사)

“원하는 맛의 비건(완전 채식) 케밥을 만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고기의 맛은 질감과 양념 맛에서 와요. 그건 만들어낼 수 있어요. 채식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미국 음식을 여전히 즐깁니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데이비드 라이트 씨(30·대학원생)

“제게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요. 전 행복한데….”―유다님 씨(20·대학생 연합 채식동아리 ‘베지유니스’ 회원)

“작년에 제주도에 1년간 있었는데, 모든 음식을 준비해서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서울에는 채식 식당이나 카페가 잘 갖춰져 있는데, 경제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도시가 채식하기에 더 편해요.”―이호 씨(29·요가 강사)
 
확산되는 환경 윤리
 
“미술대학 출신이라 자연을 벗 삼아 작업하고 자연식에 관심 많은 공예인들과 친합니다. 그래서 채식 전문 식당을 열었죠. 인테리어도 직접 해서 농업과 미술을 결합해 보려 했어요. 채식 식당을 고집하는 이유도 문화가 접목된 먹거리를 개발하기 위함이죠.”―이하웅 씨(55·채식식당 ‘바비오네’ 대표)

“패딩은 무조건 반대해요. 동물 털이 들어가잖아요.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다른 생명을 희생한 상품을 사용하지 않아도 잘살 수 있는데, 굳이 그런 걸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채식은 먹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김보미 씨(23·대학생 연합 채식동아리 ‘베지유니스’ 회원)

“비건 페스티벌엔 모두가 평등한 봉사자 과정으로 참여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합니다.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의견 하나를 조율할 때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비건은 환경과 생명을 위하는 생활방식이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이번엔 생분해되는 일회용품 사용을 권장하기로 했어요.”―최서연 씨(36·비건 페스티벌 기획단)
 
삶이 달라졌어요
 
“어릴 적엔 워낙 몸이 약해서 부모님이 좋다는 음식은 다 구해다 먹이셨어요. 끼니마다 고기반찬이 상에 올랐죠. 하지만 소화제도 달고 살았습니다. 사찰에 다니며 시작한 채식 덕분에 건강도 찾았고, 이렇게 채식요리 연구가로 18년째 살아오고 있죠. 더 많은 사람에게 채식을 보급하고 싶어요.”―홍영희 씨(58·비건채식요리 연구가)

“채식을 하다 보면 감기에만 걸려도 ‘채식 때문에 그렇다’며 공격을 받아요. 그래서 시작한 요가가 직업이 됐어요. 채식을 한다는 점은 오히려 직업에 장점이 됐죠. 채식을 시작한 건 제 삶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이호 씨

“회사에서는 채식을 하기 힘들어요. 예의 없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걸 만회하려고 1.5배로 더 열심히 일하다 한계가 와서 결국 2, 3년 뒤 그만뒀습니다. 그 사실을 어머니께 숨기고 채식 식당에서 일했어요. 어머니께서 나중에 알고는 슬퍼하셨죠. 지금은 채식 카페 열고. 비건 페스티벌 열며 좀 다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강소양 씨(39·비건 카페 ‘달냥’ 운영)
 
순수주의 갈등

 
“채식주의자들도 의견이 다 달라요. 콩고기를 먹는 것도 결국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니 옳지 않다, 버려지는 가죽을 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것도 결국 가죽을 쓰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사람도 있어요. 서로 다른 기준들을 조율하기 힘들 때도 있죠.”―강소양 씨

“주위 사람들이 ‘그만하면 됐다’며 계속 고기를 권합니다. ‘생선은 왜 먹느냐’ ‘식물은 왜 먹느냐’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도 붉은 고기를 덜 먹으려는 노력인데, 좀 스트레스를 받아요.”―김포라 씨(36·회사원·네이버 카페 ‘채식공감’ 회원)

“유럽에서 먹었던 팔라펠(콩과 향채를 갈아 튀긴 요리)에 반해 가게를 냈는데 채식하는 분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죠. 항상 재료를 꼼꼼하게 물어보는 분들이 계세요. 비건을 하는 분들을 위해 만든 ‘홀그레인 머스터드’ 소스가 있는데, 이게 어떻게 비건이냐며 끝까지 따지는 분이 있어 주방에서 재료를 전부 꺼내온 적도 있답니다.”―오용환 씨(46·채식 식당 ‘잭스빈’ 사장)

“결혼하면 채식이 훨씬 힘들어져요. 남편은 채식을 하지 않거든요. 특히 육아에서 많이 부딪치게 돼요. 최대한 아이가 먹은 고기가 무슨 동물인지를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유치원 급식에 뭐가 나왔는지까지 확인하죠.”―차김은선 씨(37·동물동반 숙박가능 게스트하우스 ‘밭’ 대표)

“이젠 내성적인 사람도 채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어요.”―이권우 씨(20·대학생)

“한국에서 채식 식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해외 구매를 많이 하게 되죠. 채식인들이 애용하는 미국의 ‘아이허브’라는 사이트는 하도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한국어로도 표기가 잘돼 있어서 물건을 구매하기 좋습니다.”―황현정 씨(37·디자이너)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의상학과4학년
#비건#채식#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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