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특허괴물’ 2800여개 활개… 툭하면 “로열티 내라” 경고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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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부담 큰 中企 협박… 합의금 뜯어

#1. 올해 초 자동차 부품제조 중소기업은 해외 특허관리전문회사(NPE)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특허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해 특허 침해 제품의 판매를 중지하도록 하겠다”는 위협이 담긴 경고장이었다. 해당 기업은 NPE들과 소송까지 갈 경우 판결이 나기까지 2, 3년이 걸리고 소송비용으로 300만∼500만 달러(약 33억6000만∼56억1000만 원)가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끝에 NPE가 요구한 합의금을 줬다.

#2. 국내의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 사장은 NPE로부터 특허 소송을 예고하는 경고장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경고장을 보낸 NPE가 국내 흥신소를 동원해 사장이 타고 다니는 차량을 알아낸 뒤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서 합의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위협을 해 온 것이다.

최근 들어 특허괴물들이 공격 대상을 넓히면서 대기업을 넘어 중소·중견기업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글로벌로 활동하는 특허괴물들은 국내 기업에 대한 소송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제기하면서 중소기업들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기업이 국제법적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불황으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특허괴물의 공격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특허 전문가들은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NPE로부터 경고장을 받으면 실제 소송까지 가기보다는 중간에 합의금을 줘 버리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식재산보호원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NPE 수는 2800여 곳이나 된다. 대표적인 NPE로 대만의 인더스트리얼 테크놀로지, 미국의 아메리칸 비히큘러 사이언시스 등이 있다. NPE는 경매 등을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의 특허를 확보한 뒤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로열티, 배상금, 합의금 등의 명목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미국에서 소송이 진행되면 1년에 평균 10억 원 가까운 돈이 들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해서다. 신피터경섭 법무법인 다래 변호사는 “지금까지 맡았던 중소·중견기업 소송상담 200여 건 중에서 소송까지 간 것은 4건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합의로 끝났다”며 “소송까지 간 4곳은 그나마 기업 내에 특허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이 피소당한 소송 건수는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소송 전 단계인 경고장을 받은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했다는 것이 특허업계의 중론이다.

특허법인 가산의 이준영 변리사는 “전문가가 봤을 때는 무효가 될 만한 소송인데 특허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특허를 분석해 보지도 않고 합의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적극적으로 대응해 승소하기도 했다. 지문인식 장치 전문기업인 슈프리마는 2013년 NPE인 블루스파이크로부터 특허 소송을 당했으나 중간에 합의하지 않고 소송을 끝까지 진행해 기각 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오성환 특허청 심사관은 “경고장을 받았다면 라이선스 수익과 사업 중단 중 어느 것이 목적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라이선스 수익이 목적이라면 악의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경고장을 보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섣불리 대응하기보다는 외부 전문가로부터 객관적인 판단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김재희 기자
#npe#합의금#특허#로열티#중소기업#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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