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오르한 파묵의 삶을 물들인 색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다른 색들: 오르한 파묵의 시간과 공간, 문학과 사람들/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660쪽·2만3000원·민음사

작품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화해를 모색해 온 오르한 파묵.
작품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화해를 모색해 온 오르한 파묵.
터키 소설가인 저자(64)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작가라서가 아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준 아버지를 둔 건 큰 축복이니까.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건축가로, 문학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서재에서 놀던 아들이 쓴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보고는 장차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상을 받기 4년 전인 2002년 세상을 떠나 이를 지켜볼 수 없었지만.

이 에세이는 ‘내 이름은 빨강’ ‘순수 박물관’ ‘검은 책’ 등으로 유명한 저자가 10년 전 출간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거대한 타이틀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소탈한 모습과 글쓰기의 만만찮은 무게에 대한 고민, 다채로운 경험이 모자이크처럼 담겨 있다.

그는 힘든 날을 구원하기 위해 문학을 원한다고 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은 가장 위대한 정치 소설이라고 주저 없이 평가한다. 카프카가 작가적 정체성을 저절로 찾은 데에 반해 보르헤스는 그것을 평생에 걸쳐 집착적으로 형성했다고 여긴다.

오르한 파묵은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는 터키가 두 개의 영혼을 지닌 것을 우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의 다양성은 사람을 분별 있게 만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혼재된 아야소피아 성당. 동아일보DB
오르한 파묵은 동양과 서양에 걸쳐 있는 터키가 두 개의 영혼을 지닌 것을 우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의 다양성은 사람을 분별 있게 만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혼재된 아야소피아 성당. 동아일보DB
행복한 가족의 모습은 서로 비슷하지만 가족이 불행하게 되는 방법은 제각각이라 했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문구로 민족주의와 정체성의 문제를 풀어낸 것은 절묘한 통찰력이다. 조국 터키의 인권 유린을 지적하다 정치범으로 재판을 받지만, 수많은 탄압과 고문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그리는 소설을 쓴다는 비난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에서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나라에 사는 작가의 고뇌가 읽힌다.

작품에 얽힌 배경과 그 과정을 확인하는 재미도 적잖다. 그의 소설에서 ‘하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왜 죄다 나쁜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자 어릴 때 하산이라는 아이가 쏜 새총에 맞아 눈 밑을 다친 기억을 떠올린다. 사소한 장치 하나에서도 소설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딸 바보’인 아빠의 모습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딸 뤼야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16년 동안 오전 4시에 잠들던 습관을 바꿨다. 소설 표지에 등장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그리는 건 독자와 작가의 상상력에 가하는 용납할 수 없는 공격이란다. 형과 경쟁하고 질투하면서 지내고, 부모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았던 성장기 에피소드는 부담 없이 읽힌다.

문학과 국가, 민족에 대한 묵직한 생각과 때로 웃음이 나오는 소소한 일상사가 교차하는 구성은 강약을 조절하며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같다. 홀로 글 쓰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작가는 수도승과 비슷하지만, 수도승이 천국을 기원하는 데 비해 작가는 현세에서 승리와 성공을 기다린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열렬한 팬이라면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을 것 같다. 책에 대한 헌사가 꽤 인상적이다.

‘가방이나 주머니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르한 파묵#다른 색들#터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