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Topic]차력사 안소니 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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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의 종횡무진 시간기행 12

B그룹 창업자 J회장은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재력가다. 종합일간지에 얼굴 사진이 게재된 적이 없고 경제신문에는 가물에 콩 나듯 가끔 동정(動靜)이 보도된다. 경제 분야를 오래 취재한 베테랑 기자 가운데도 J회장의 존재를 아는 이는 극소수다. 바꿔 말하면 J회장과 친분이 있는 언론인은 꽤 유능한 ‘민완 기자’인 셈이다.

재계에서 J회장의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은 소문이 났다. 하루아침에 몇 천억 원을 빌려줄 수 있단다. 손꼽는 재벌 회장 가운데도 급전이 필요할 때 J회장에게 ‘SOS 요청’을 한 이가 수두룩하다. 외환위기 직후 재벌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질 때 모 그룹 L회장은 J회장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형님, 이번 한 번만 더 봐 주십시오.”
“아이구 회장님, 일어서이소! 이라모(이러면) 지가(제가) 민망해집니데이.”
J회장은 상대방을 일으켜 세우고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다.
“우선 급한 대로 500억….”
“좋심더. 바로 입금시켜 드리지예. 담보보다는… 이번 기회에… 회장님 소장 미술품, 지한테 넘기시이소.”

J회장은 L회장 소장품 가운데 오래 눈독을 들인 ‘물건’ 리스트를 제시했다. 국보급 고려청자, 조선 백자, 조선 풍속화 등 시가 700억 원어치의 미술품이 나열되어 있었다. L회장은 값을 흥정할 경황이 없어 그 자리에서 매매계약서에 서명했다. 하기야 이 난리통에 경매시장에 내놓아봤자 절반 값도 못 받을 상황이다.

J회장의 이력은 베일에 가려 있다. ‘재계 인명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관, 주유소, 운수회사 등 현금 수입이 많은 업종에서 번 돈을 바탕으로 부동산 투자, 사채놀이 등으로 돈을 엄청나게 불렸다는 풍문 정도만 알려졌다.
J회장의 사위 S씨는 장인의 기업 몇 개를 물려받아 중견그룹으로 키웠다. S회장은 언론에도 가끔 노출되는 기업인이지만 장인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한다. 결혼하기 전에 엄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네가 내 사우(사위)가 덴다카이(된다 하니) 내가 살아온 가거(과거)를 톡 털어놓을끼구마! 임금님 기(귀)는 당나구(당나귀) 기(귀)! 이런 말 알제? 마음 속에 꿍친(숨긴) 기(것) 있으모 답답해서 몬(못) 산데이. 그래도 자네는 평생 내 이약(이야기)은 발설하지 말거래이!”
J회장은 인사동 한정식 집에서 마주 앉는 S청년에게 이렇게 운을 떼고 위스키를 2잔이나 거푸 마시곤 말을 이었다.
“우리 조상은 천민(賤民)이었데이!”
“예?”
“대대로 사당패로 동네방네 떠도는 인생이었다카이….”
J회장은 다시 독한 위스키를 2잔 마시고 눈을 껌벅이며 사설(辭說)을 널어놓았다.

“울 할배는 사당패 거사(居士), 울 할매는 여사당 우바이… 사당패는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댕기며 술자리서 노래 부르고 춤 추멘서 묵고 살았제. 우바이들은 웃음까지 팔았다카데. 울 아부지 팔자도 사나바서(사나워서) 유랑극단에서 코흘리개 때부텅 밥벌이를 항기라. 줄타기하는 여자 곡예사가 울 엄마라! 나는 싸카수(서커스)단 천막 구석에서 태어났다카이. 나도 걸음마 떼면서부텅 무대에 섰다 앙이가!”

J소년의 부모는 혹한이 몰아치는 겨울날 밤, 공중그네를 타다 바닥에 추락해 둘 다 허리가 으스러졌다. 그날 이후 부모는 죽는 날까지 방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못 하는 장애로 고생했다. 창졸간에 소년 가장이 된 J군은 부산 영도구의 영화관에서 청소, 사장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며 부모를 봉양했다.

유랑생활 탓에 초등학교 문턱에도 들어가지 못한 J군은 변성기 무렵까지 한글 문맹자였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게 좋은 점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 마음에 드는 영화를 수십 번 보다 보면 대사도 외워졌다. 이런 영화 대사를 일상 대화에도 자주 써먹었다.
“장돌뱅이 인생이란 부초(浮草)와 같습니더. 물결이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떠돌아다니지예. 그러나 진정한 자유인이기도 하지예.”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관용을 의미합니데이. 내 욕망만 채우려는 에로스는 집착에 불과한 것이지예.”
이러면 상대방이 때로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물었다.
“자네, 꽤 유식하네? 어느 학교 나왔소?”
J군은 무식하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몰래 한글을 익혔고, 한자를 썼고, 신문을 읽었다.

어느 날 이탈리아 영화 <길(라 스트라다, La Strada)>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와 병약한 소녀 젤소미나가 스크린에 등장하자 아버지, 어머니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싸구려 서커스단을 전전하는 그들의 부초 같은 인생에 한없는 공감이 갔다. J군은 달력 뒷면에 <길>의 포스터를 베껴 그렸다. 잠파노 역으로 출연한 안소니 퀸이라는 남자배우의 수염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들여 모사(模寫)했다.

“앗! 사진 같네! 누가 그린 거야?”
극장 사장이 J군이 그린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지가 그맀는데예.”
“그래? 안 그래도 간판쟁이 바꿀려고 했다. 간판에 그려진 안소니 퀸이 너무 안 닮았다고 손님들이 하도 면박을 줘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어야지. 자네가 그려보게.”

J군은 영화관 옥탑방 화실에서 붓을 들고 잠파노와 젤소미나를 다시 그렸다. 유화 물감이 아니라 페인트로 칠했지만 채색화를 그린다는 기쁨에 J군은 환희에 젖었다. 이런 걸 두고 천부(天賦)의 재능이라 하는가. J군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그림을 배우지 않았지만 사물을 사진 수준으로 재현하는 데 천재였다.

“와! 안소니 퀸 봐라! 진짜 같다!”
극장 앞을 지나는 행인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줄줄이 터져나왔다. 이 간판 덕분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지방신문에는 ‘사진인가, 그림인가?’라는 화제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 후 다른 영화 간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배우 김진규, 김승호, 김지미, 황정순 등의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 간판을 구경하러 몰려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영화관 P사장은 떼돈을 벌었다. J군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 두툼한 월급봉투를 주었다. 그러나 P사장의 얼굴은 갈수록 울상이 되어 갔다. 출근해서 코빼기만 비친 후 사라지기 일쑤였다. 어느 날 핏발 선 눈으로 나타난 P사장에게 J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요즘 몸이 펜찮으십니꺼?”
“아니… 그렇진 않고….”
“지가 도울 일이라도 있습니꺼?”
“도울 일? 음… 그러면 이 그림, 좀 그려줄래?”
P사장은 사과를 그린 정물화를 갖고 와 유화 물감과 캔버스를 주며 복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려 드리야지예.”

J군은 그게 명화 위작(僞作)인 줄 몰랐다. 원본과 똑같이 그린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 그저 부지런히 그렸다. 그 후 초상화, 풍경화 등 닥치는 대로 그렸다. 화선지에 조선 풍속화도 그렸고 ‘지장보살도’ 같은 불교 그림에도 손을 댔다. 돈도 두둑하게 받았기에 신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P사장은 도박에 빠져 위조 그림 팔기에 나선 것이었다. 문화재급 그림을 위조해 밀항선을 통해 일본 조직에 보냈다.

“자네, 일본에 갔다 와야 하겠다.”
P사장의 제의에 J군은 깜짝 놀랐다.
“지가 무슨 일로? 일본말 하나도 모르는데예.”
“일본말 몰라도 아무 걱정마라. 거기 가서 그림만 몇 장 그리고 오면 된다.”

J군은 얼굴이 험상궂은 일본인 청년 2명의 호위를 받으며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 근교의 호젓한 마을의 호화로운 화실에서 6개월간 기거하며 서양명화 5점을 그렸다. 대만 출신의 노인 화가가 J군의 스승 노릇을 하며 ‘판박이 묘사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그린 위작 대부분은 인상파,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이 그림들은 원본이야!”
노인 화가는 원화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화를 눈앞에 놓고 똑같이 그려달라는 주문이었다.

6개월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J군은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노인 화가가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 소름이 끼쳤다.
“놈이 자꾸 그리면 들통 난다구. 더 이상 그리지 못하게 손모가지를 잘라야지!”
그때서야 위조 그림을 제작한다는 게 중범죄임을 실감했다. 공포심과 죄책감이 엄습했다. 마침 노인 화가가 멜론을 깎아 먹는다고 칼을 잡자 J군은 자기 손목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오사카 시내로 들어와 거리를 헤매다 한국 식당 앞에서 굶주림에 지쳐 쓰러졌다. 그를 발견한 식당 주인의 호의로 그 식당에 취직해 2년 여 일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에게는 인편을 통해 돈을 부쳤다. 식당 주인의 의동생이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부산에 가는 무역업자라 했다. 그 의동생 N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문화재 밀매업자였다. 한국에서 도굴 문화재를 받아 일본 수집가에게 넘기는 거간꾼이었다.

어느 날 J군은 N씨가 가진 지장보살도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부산에서 그린 바로 그 그림이었다.
“이거, 가짜 그림입니더예!”
“뭐라? 한국 사찰에서 훔친 진품으로 알고 샀는데!”
“진품은 어디엔가 있을 낍니더. 이건 내가 베껴 그린 기라예.”
“자네가 그렸다고? 허허!”

J군은 자신이 그렸음을 증명하려 흰 종이를 꺼내 그림을 보지 않고 연필로 슥슥 스케치했다. N씨는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얼굴이 으그러졌다. 그는 주방에 들어가더니 시퍼런 회칼을 들고 나왔다.
“그놈을 요절내야지!”
당장 누군가를 찔러 죽일 듯 허공에 칼질을 했다.
“진정하이소! 부산에 나를 데리다 주모 해결해드리겠심니더.”
“자네가 어떻게?”
“가짜 그림을 하나 더 그려 진품과 바꿔 치기 하겠심니더.”
“좋아! 그럼 나도 자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하겠네.”

J군은 N씨와 함께 밀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N씨는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군함도’ 탄광 막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사나이였다. 해방 이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서 스모 선수로 성공하겠다며 체육관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수련과정에서 민족차별에 시달렸고 허리를 다쳐 더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야쿠자 보스의 보디가드로 일하다 그 보스의 고미술품 매매 심부름을 전담하게 됐다.
그게 인연이 되어 자신도 거간꾼으로 뛰어들어 한국과 일본을 들락거린단다. 고객 가운데 한국의 유명 재벌 총수도 있고 일본의 야쿠자 보스도 있단다.
N씨는 부산에 도착해서 지장보살도를 넘긴 영화관 P사장을 찾아갔다. 위작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장님 덕분에 재미 좀 봤소이다.”
“아, 다행입니다.”
“저번 것 같은 지장보살도, 하나 더 찾아주시오. 그리고 고려시대 수월 관음보살도… 구해지면 부탁하오.”
“관음보살도는 워낙 귀해서….”
“그러니까 사장님께 특별히 부탁하는 것 아니오. 그리고… 영화관, 혹시 처분할 의향 없소?”“극장을 매입하시려고요?”
“친척 동생에게 경영을 맡길 참이오.”

2년 만에 귀국한 J군은 P사장을 찾아갔다.
“이게 누군가? 이젠 어른이 되었네! 자네가 일본에서 잠적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어! 다시 나타나면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하더군.”
“일본에는 다시는 안 갈 낍니더.”
“자네가 수고비도 받지 않았다며? 그것 받으러 오라는 거야.”

P사장은 J군에게 지장보살도와 수월 관음보살도를 내놓으며 베껴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낡은 비단에다 채색하고 1000년 전에 그린 것처럼 일부러 낡게 탈바꿈하는 수법을 썼다. 워낙 정교하게 모방하므로 전문가조차 진위(眞僞)를 가리기 어렵다.
J군은 지장보살도, 관음보살도를 2점씩 그려 가짜 그림들은 P사장에게 모두 넘기고 진본은 자신이 감추었다. 몇 달 후 진본 2점을 N씨에게 넘기고 대가로 영화관을 받았다.

영화관 소유주가 된 J씨는 위작 세계와는 단호히 손을 끊었다. 납치, 살해 위협을 숱하게 당했으나 보디가드 2명을 고용하며 버텼다. 조악한 영화 간판을 볼 때마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으나 꾹 참았다.
J씨는 부산 해운대에 놀러온 서울 아가씨와 사귀어 결혼하고 사업 중심지역을 서울로 옮겼다. 주유소, 버스회사 등을 세워 돈을 벌었다. 버스 종점 부지는 필요면적보다 몇 배 넓게 샀다. 훗날 변두리 차고 땅이 아파트 부지로 탈바꿈하면서 J씨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J회장은 미국 MIT 공학박사인 사위가 경영에도 재능을 보인다고 판단하고는 은퇴했다. 은거생활에 들어간 J회장은 화실을 마련하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한편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충북 단양의 풍광 좋은 땅을 매입하여 미술관을 지었다.

J회장은 일본을 들락거리며 허리가 구부정해진 미술품 거간꾼 N씨와 만나 과거를 회상했다.
“자네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모사 실력, 지금도 일본에서 전설로 이야기되고 있네.”
“대만 출신 위작 전문 하가(화가)에게 노하우를 배웠다 앙입니꺼. 그 영감님은 우째 됐는지?”
“중국 본토로 돌아가 정통파 화가로 활약하다 죽었다는 풍문을 들었다네.”
“그 영감도 지(제) 정신 들고 죽었능가베. 나도 인자(이제) 정신 좀 차맀심더. 다름 아이라… 옛날에 내가 그린 가짜 그림, 모도(모두) 찾아주이소. 값은 얼마든지 쳐줄 테니께.”
“가짜 그림이 진본처럼 버젓이 전시되는데도?”“진본 값 다 내고 사들일랍니더.”
“뭐 할 건데?”
“부끄러운 제 가거(과거) 앙입니꺼? 다 불 태워뿌릴 낍니더.”
“잘 결심했네!”
“그라고(그리고)… 일본에 있는 한국 고미술품, 보는 족족 사 모을 테니께 행님이 힘 좀 써주이소. 미술간(관)을 하나 채리(차려) 놓았는데 거게 소장할 낍니더.”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J회장의 미술관은 완성됐다. 은둔 인물이 만든 미술관답게 그곳도 베일에 가려졌다. 극소수 미술계 인사들만이 내부를 들여다봤을 따름이다.

J회장은 딸이 미술관에 찾아오는 것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여게 올라 하모 <고유섭 전집> 다 읽어야 한다꼬 내가 말했제? 완독했나?”
J회장은 사후에 미술관을 딸에게 맡길까 했으나 미술에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은 딸을 믿을 수 없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의 저작들을 딸에게 읽히려 했으나 몇 년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 고미술은 고리타분해서요.”
“그라모(그러면) 이태리 미술 이야기해 볼까? 루네쌍수(르네상스) 하가(화가) 지오토에 대해 니가 아는 대로 이야기해 보거라.”
“다빈치나 라파엘로 같으면 알겠는데 지오토는 좀 케케묵지 않았나요?”
J회장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우리 미술관에 지오토 원본 그림도 있는데… 딸내미가 이리 무식해서….”

J회장은 기침을 몇 차례 쿨럭거리곤 말을 이었다.
“미술관 운영을 맡을 관장, 물색해볼래? 이왕이면 니가 스승으로 모실 분으로….”
“연봉은 얼마 줄 건데요?”
“허허! 여술(예술)을 논하는 마당에 돈 이약(이야기)부터 먼저 들으이께 민망하구만. 능력에 따라 줄 참이다. 백지수표도 줄 수 있다.”
“백지 수표라면… 달라는 대로 준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J여사는 그날부터 미술관장 구하는 일로 신바람이 났다. 이런저런 연줄을 통해 미대 출신 명사들을 접촉하는가 하면 미술관, 박물관 관계자들을 만나 적임자를 찾았다.
J여사의 추종세력인 ‘르네상스회’ 회원들도 마치 자기가 미술관장을 뽑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듯이 위세를 부렸다.
“네 여동생, 하버드에서 미술사 박사 받은 애, 아직도 강사로 뛰고 있니? 좋은 자리가 나서 말이야….”
이런 식이었다.

J여사는 서울대와 고려대에 고고미술사학과라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미술사, 미술평론, 미학 등의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30, 40대 인재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유력 인사의 딸이 많았다.
이력서를 받거나 경력을 조회해 후보자로 간추린 인원만도 30여 명. J여사는 그 가운데 자기가 스승으로 모실 분보다는 수족처럼 편히 부릴 인물 위주로 20명을 골랐다.

서울시내 S호텔의 레스토랑 별실에 예약을 하고 후보자와 그를 소개한 사람을 동시에 초청해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며 면접을 했다. J여사 본인이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니 심층 인터뷰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떤 컨셉의 미술관인가요?”
피면접자가 이렇게 물으면 J여사가 당황해서 허둥거리는 형국이었다. J여사는 방법을 바꿔서 기선을 제압하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
“박사 학위 논문을 소개하면서 그 내용을 미술관 경영에 어떻게 활용할지 연결해 보세요.”

그 나름 고생 끝에 최종 후보자로 5명을 추렸다. 이들은 J회장에게 데려가 면접을 보게 할 대상자다. 미술관 현장으로 가면 미술관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J회장은 성북동 간송미술관 부근 전통찻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미국 박사 2명, 프랑스 박사 2명, 독일 박사 1명이 차례로 J회장과 1대 1 면담을 했다. J회장은 책으로만 배우던 미술이론을 대화를 통해 듣고 지적(知的) 열락(悅樂)을 느꼈다. 이들과 나눈 화가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되살려 보았다. ‘부초미술관’이라 이름을 붙인 자신의 미술관에 이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됐다.
고갱, 뒤샹, 렘브란트, 마티스, 브라크, 샤갈….
한국의 화가로는 고희동, 나혜석, 도상봉, 문신, 박고석, 손상기, 이중섭, 장욱진, 한묵….

“아버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누구예요?”
“모두 마음에 드네. 실력, 학력, 경력… 나무랄 게 없구만.”
“그럼 제비로 뽑나요?”
“그라까? 하하하!”
“농담이죠?”
“그래 농담이야. 굳이 흠을 잡자카모 5명 모두 하려(화려)한 금수저 출신이야. 부잣집에서 태어나 온실 속에서 자랐고 부모 돈으로 유학 간 거 아잉가?”
“금수저가 고급 미술관 관장 자격으로 필요한 스펙 아니에요?”
“폼이나 잡는 간장(관장)을 뽑을라꼬 하는 기 앙이다. 심지가 곧고 깡다구가 좋은 인물이 필요해.”

J여사는 또 다른 후보자 몇몇을 물색해 아버지 앞에 데려갔다. 이들도 앞선 사람들과 마찬가지 이유로 퇴짜 맞았다. 처음엔 신바람 나던 J여사는 이제 관장 고르는 일이 골칫거리가 되어 미간을 찌푸리고 다녔다.

청담동 M부티크에 나타난 J여사의 얼굴을 본 O대표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모님, 무슨 걱정이라도?”
“아이고! 말 마세요. 친정아버지가 워낙 까다로운 양반이어서….”
O대표가 더 묻지도 않았는데 J여사는 입에서 거품을 뿜어가며 최근 사정을 좔좔 이야기했다.

“사모님, 대단히 외람스런 제안인데… 혹시 제가 아버님을 한 번 뵈면 안 될까요?”
“예?”
“제가 명품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미술사와 미학을 공부했답니다. 작은 미술잡지에 미술평론가로 데뷔도 했고요. 미술관 관장이라면 경영자인데 사업 경력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J여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만 껌벅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O대표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J여사는 어색함에서 벗어나려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O대표님, 농담도 잘 하시네!”

J여사는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닦달을 당했다.
“우찌 됐노?”
“하버드도 싫다 하시니까 상버드 출신을 찾고 있어요.”
“학벌을 보는 기 앙이라니까! 멍가(뭔가) 빠릿빠릿한 사람을….”
“장사꾼도 괜찮나요?”
“니 말 버릇이 와(왜) 그 모양고? 상인이 울매나 소중한 사람인데 깔보듯이 장사꾼이라 하노? 그래, 좋다. 니 말대로 장사꾼 다리고(데리고) 와 바라.”
“진짜로요?”
“진짜지! 우떤(어떤) 사람인데?”
“청담동에서 조그만 가게 하는 여잔데, 이탈리아어도 잘하고 이것저것 아는 게 많아요. 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정확하게 모르겠고….”

J대표는 O대표의 얼굴이 떠올라 아버지 앞에서 말을 꺼냈다가 낭패를 당하고 있다. 정말 O대표를 데려 와야 하나?
J회장과 O대표의 약속장소는 인사동 한정식집이었다.
J여사는 아버지를 모시고 인사동으로 왔다. J회장은 약속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인사동 거리를 좀 걷자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수두룩했고 곳곳에서 거리 공연이 펼쳐졌다.

어깨가 건장한 40대 중년 남자가 차력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온몸에 철사를 칭칭 감고는 기합을 지르며 철사를 끊었다. 차력사가 데리고 다니는 원숭이가 공중제비 재주를 보였다. 차력사의 재주는 다양해서 트럼펫까지 불었다.
‘빠라빠라라…’
J회장의 귀에 익은 멜로디. 영화 <길>의 주제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저 차력사는 잠파노 흉내를 내고 있구나.

J회장은 O대표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미술 이야기 대신에 살아온 역정에 대해 주로 물었다.
“번듯한 학교 졸업장 하나 없습니다. 공식 학력은 전수학교 중퇴입니다. 사춘기 소녀 때부터 소녀가장으로 밥벌이를 해야 했습니다.”
“호오! 그래요?”

J회장은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으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벽에 걸린 추사의 세한도 모사작품을 보고 J회장은 후식으로 나온 사과, 배를 먹으며 슬쩍 질문했다.
“추사 선생이 여향(영향)을 받은 중국 하가(화가)로 누가 있겠소?”
“제가 추사 김정희 선생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당대(唐代)의 왕유, 송대(宋代)의 거연, 정소남, 원대(元代)의 조맹부, 예찬, 명대(明代)의 문징명, 동기창, 청대(淸代)의 팔대산인, 정섭, 운수평, 고기패, 몽선…”
“아, 알겠소! 그만 하면 됐소! 허허허!”

J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O대표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질문을 또 던졌다.
“이태리 말을 잘한다고 하데요? 15세기 이태리 여술가(예술가)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여럿입니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조르조네, 베로네제, 티치아노, 코레조… 이런 분들은 천재급이고요. 명성은 덜 하지만 예술성이 만만찮은 화가로는 폰토르모, 로소, 카바라조, 틴토레토, 알베르티넬리…”
“됐소! 대단하오! 하하하!”
J회장은 박수까지 치며 환호했다. J회장의 마음이 O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바깥으로 나와 전통찻집에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인사동 거리를 걷는데 아까 그 차력사가 다시 철사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있었다. J회장의 머릿속엔 영화 <길>이 떠올랐다.
J회장은 호기심이 발동됐다.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인 저 O대표란 여성은 혹시 <길>을 봤을까? 이탈리아 전문가라 하니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을 모르지는 않겠지?

“저 차력사를 보모(보면) 연상되는 무슨 영화가 있소?”
J회장이 O대표와 눈을 마주치며 묻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바로 대답한다.
“라 스트라다! 길이죠! 차력사는 잠파노!”
“…….”

J회장은 머리가 어질해져 비틀거렸다. 잠파노 역의 안소니 퀸 얼굴이 어른거렸고 그 얼굴 위에 유랑극단 피에로였던 아버지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젤소미나의 얼굴 위엔 서커스 곡예사인 어머니가 출몰했다.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J여사는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부축하며 외쳤다.
J회장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J여사는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오라고 다그쳤다.

인근 서울대 병원으로 달려가는 승용차 안.
J회장은 숨을 푸푸 힘겹게 내쉬면서도 무슨 멜로디를 기도문처럼 중얼거렸다.
“빠라빠라라…”
<길>의 주제가를 트럼펫 소리처럼 내뱉는 것이었다.
O대표는 승용차 안에서 안소니 퀸 자서전 <원 맨 탱고>를 발견했다. J회장이 틈틈이 읽는 책이리라.

응급실에 들어가 호흡 처치를 받았다. 당직 의사는 고령의 환자가 가벼운 쇼크 증세를 보였으나 하루 이틀 정양하면 호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침 VIP실이 비었기에 그쪽으로 모셨다.
두어 시간 잠에 빠진 J회장이 눈을 떴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누구시더라?”
“아버지! 저를 못 알아보시겠어요?”
“음… 부초미술관 부관장?”
“아! 의식이 깨어나셨군요!”
J회장은 옆에 서 있는 O대표를 응시했다.
“아버지, 방금 점심 먹은 이 분도 아시겠지요?”
“음… 젤소미나?”

O대표는 J회장의 뇌리에 <길> 장면이 떠나지 않음을 간파하고 살포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회장님, <길>에 나오는 대사 몇 줄을 제가 읊어볼까요?”
J회장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O대표는 팔을 벌리고 일어서 영화 속에 피에로와 젤소미나가 나누는 대화를 1인 2역으로 읊었다.

젤소미나= 난 쓸모가 없어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못 주는 불필요한 존재예요.
피에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래요.
젤소미나= 그걸 어떻게 알죠?
피에로= 나도 잘 몰라요. 사실은, 그건 하나님밖에 모르죠. 이 돌멩이도 분명 이곳에 있는 이유가 있는 거죠. 젤소미나도요.

O대표의 어설픈 연기가 끝나자 J회장은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쳤다.
O대표는 J회장 곁에 바짝 다가가 고맙다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J여사가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젠 이 분이 누구인지 생각나지요?”
“그럼!”
“청담동 부티크 대표님….”
“아니! 부초미술관 관장님!”

고승철 소설가 songche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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