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敗戰 직전, 히틀러가 읽은 마지막 책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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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비밀 서재/티머시 라이백 지음/박우정 옮김/392쪽·1만8000원·글항아리

기자들마다 취재 방식이 다르지만 필자인 기자는 학자들의 인터뷰 장소로 그의 연구실을 선호한다. 인터뷰 전 그의 논문을 읽고 학문적 관심사를 파악하지만 그것만으로 취재원의 현재를 이룬 지적 배경을 알기는 힘들다. 그런데 연구실에선 서가에 꽂힌 책 표지들을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종교나 취미, 관심사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히틀러가 소장한 1만6000여 권의 장서 가운데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 10권의 내용을 히틀러가 처한 역사적인 상황과 엮어 분석했다. 그동안 히틀러의 전기는 숱하게 나왔지만 이처럼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 연구서는 별로 없었다.

저자의 분석 방식은 매우 디테일하다. 각 문장이나 단어에 친 밑줄은 물론이고 책의 여백에 쓴 각종 문장부호와 메모를 자세히 살펴봤다. 히틀러가 책을 보면서 어느 부분에 주목했는지, 그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군사 전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패전 직전 읽은 ‘프리드리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의 역사’(토머스 칼라일 지음)는 그의 망상적인 전쟁 구상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 18세기 후반 ‘7년 전쟁’에서 패망 직전까지 몰린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1762년 1월 적국인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평소 프리드리히 대왕을 롤 모델로 삼은 히틀러는 이 책을 본 뒤 연합군 사이의 분열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으리라 보고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추진했다. 마침 종전 직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히틀러의 환상은 더 커졌다.

프리드리히 대왕처럼 ‘2개의 전선(two front war·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복수의 적과 싸우는 것)’을 벌인 히틀러가 결국 그것으로 인해 패배했다는 점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기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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