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의 한국 블로그]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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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지난달 한국을 여행하는 중이던 프랑스 만화가 알프레드와 서울에서 보기로 했다. 시내를 잘 모르는 외국인과 약속할 때는 찾기가 쉬운 장소에서 만나야 해서 시청 앞에 있는 서울도서관 정문 계단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날 시청 앞에서 축제가 열리는 줄 몰랐는데 먼저 도착해서 보니 혼란스러웠다.

서울도서관 계단까지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15분 늦게 도착한 알프레드를 기다리는 동안 착잡한 감정이 생겼다. 교감과 경악. 기쁨과 슬픔. 희망과 걱정. 사랑과 분노 등.

제17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퀴어문화제 같은 행사와 연대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세계의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모임이나 퍼레이드에서 볼 수 있듯 그날 서울광장에서도 축제 참가자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은 빛을 발했다. 그러나 광장 사방에, 내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와 그 주변에는 분위기가 무섭게도 달랐다.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다채롭고 평화로운 퀴어축제와 축제 반대 모임의 대조가 강렬했다.

2년 전에 LGBT 퍼레이드가 열렸던 신촌에서 처음 보게 된 반동성애 단체들이 기억났다. 그때 현수막에 적혀 있던 혐오적인 슬로건을 읽고 충격을 받은 것도 기억났다. 이번에는 주위를 둘러보니 2년 전보다 훨씬 많은 ‘반축제자’가 모인 것 같아서 동성애 혐오를 한층 더 깊게 느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커밍아웃을 하기가 쉬운 나라가 없겠지만 한국은 확실히 아직 멀었다’ ‘그 사람들한테는 동성애가 무서운가 보다. 남의 자유가, 또 남의 행복이 그렇게 무서운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빨리 변하고 있으니 보수적인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이 정도의 반감은 심각하네’ ‘3년 전 프랑스에 동성결혼이 합법으로 되었을 때의 대규모 시위가 비슷했을까’ 등.

그리고 솔직히 ‘생각보다 한가한 사람이 참 많구나’라며 빈정대듯 혼잣말도 했다. 열심히 기도하는 축제 반대자도 있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예수회 학교에 다녔고 천주교 환경에서 자랐다. 내 의견이 공식적인 교리와 다르지만 기독교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반대는 아닐 것이다. 나는 ‘동성애=죄’란 개념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축제 반대의 슬로건들이 제일 무서웠다. ‘박원순 OUT’이란 표지판을 보고 나는 ‘서울시장을 싫어하는구나. 시장의 정책을 누구나 좋아할 수는 없지’라고 생각했다. ‘동성애 OUT’이란 말이 적혀 있는 표지판을 보고 ‘그 사람들한테 남의 성생활이 무슨 상관이겠어? 간섭할 바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동성애 OUT’이란 메시지는 모든 동성애자한테 커밍아웃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슬람 OUT’이라는 표지판을 읽고 기가 막혔다. 이 슬로건은 증오 조장이나 다름없다.

유럽에도 동성애 혐오가 있다. 동성애를 참을 수 없는 그들은 보통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외국인, 이방인, 이단자 등 자기와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퀴어 문화에 거부감이 든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지 15년이 되었다. 벨기에는 13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부분의 인구가 천주교인인 나라인데도 동성결혼이 프랑스보다 빨랐다. 천주교 강국 아일랜드에서도 최근 가능해졌다. 앞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으로 믿는다.

어느새 알프레드와 인사하고 시위 장소를 떠나게 됐다. 그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여러분, 잘 있어라. 다음 축제에는 나도 들어가서 함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퀴어문화축제#성소수자#lgbt#동성애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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