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납범벅 우레탄, 공원 농구장 더 심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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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가 한산하다. 놀이터 바닥에는 납 성분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우레탄이 아닌 고무칩이 사용되지만 학부모들의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가 한산하다. 놀이터 바닥에는 납 성분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우레탄이 아닌 고무칩이 사용되지만 학부모들의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운동장 우레탄 트랙에서 납 성분이 검출됐다는데 아이들 건강이 위험하지 않겠어요? 임시로 안전 라인만 설치할 게 아니라 운동장 자체를 바꿔야죠.”

1일 오전 8시 25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딸을 데려다 주던 아버지 A 씨(51)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 학교에서는 교장과 교감, 학교보안관이 모두 나와 아이들이 운동장 트랙 위로 가로질러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 미세먼지 이어 이번엔 우레탄 공포


이 학교는 최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우레탄 트랙에서 납 성분이 한국산업표준(KS) 기준(kg당 90mg)을 초과해 검출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우레탄 트랙은 2008년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조성하며 설치했다. 교장은 “당시 최고 기술로 설치해 학부모 반응도 좋았다”며 “유해 중금속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이 우레탄 트랙 사용을 전면 중지했지만 일선 학교는 혼란스럽다. 납 성분이 많이 검출됐다는데 우레탄 트랙을 단순히 밟는 것도 안 되는 건지, 그 위에 앉는 등 신체 접촉만 피하면 되는 건지 등을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체육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학부모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전국 교육청이 우레탄 트랙이 설치된 전국 초중고교 및 특수학교 2811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이달 30일까지 진행 중인데 납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곳이 벌써 서울 51곳, 경기 148곳, 대전 15곳 등이다. 교육부에서는 최소 1000곳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불안이 크다. 초등학생은 경계심이 별로 없어 우레탄 트랙 위에 앉거나 트랙을 만진 손을 입으로 가져갈 위험성이 높아서다. 이날 취재진이 만난 6학년 여학생은 “유해물질이 나왔다지만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모두 운동장에 나와서 논다. 6년이나 다녀서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부모 B 씨(40·여)는 “공부에 지친 아이가 운동장에서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오히려 건강을 해친 것 같아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학교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마사토보다 훨씬 비싸지만 우레탄 트랙을 조성한 건 학생을 위해서였다. 흙먼지가 날리지 않고 동물 분변 등 세균 위험도 적고, 비가 온 뒤에도 바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업체는 모두 조달청을 통했기에 당연히 안전한 제품일 거라고 믿었다.


○ 숫자 파악도 안 되는 공원 농구장


문제는 우레탄 소재가 전국 공원의 농구장 바닥에도 많이 쓰였다는 점. 그러나 공원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대부분 농구장 수나 바닥재 현황을 파악조차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농구장에는 거의 우레탄이 사용됐는데 바닥재 관련 통계가 없어 문제가 있는지는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레탄 트랙은 운동장의 일부분이지만 농구장 바닥에는 전부 우레탄이 깔린다. 또 농구를 하다가 바닥에 앉거나 뒹구는 경우가 많아 만약 해당 우레탄에 납 성분이 기준치 이상 포함돼 있다면 신체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더 크다.

많은 학부모가 우려하는 어린이 놀이터 바닥에는 우레탄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국민안전처 장관이 고시하는 ‘어린이 놀이 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에 따르면 어린이 놀이터 바닥에는 충격 흡수용 표면재가 사용돼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어린이가 놀이기구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소재여야 하는데 우레탄은 탄성이 부족해 대부분 놀이터에는 고무칩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공공 놀이터는 지자체, 아파트 놀이터는 관리사무소가 2년마다 적합성 검사를 하게 ‘어린이 놀이 시설 안전관리법’에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터의 고무바닥재도 유해 가능성이 있다. 환경부는 2009년 4월 수도권 놀이터 16곳의 고무바닥재를 조사한 결과 “잡고무가 포함된 제품에서 하절기 등 기온이 높을 때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방출량이 증가했다. 이로 인한 피부 자극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해외 연구 사례에서는 고무바닥재 재료로 사용되는 타이어에서 납 카드뮴 등 중금속 15종과 벤젠 등 39종의 VOCs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김동혁 기자
#우레탄#납#농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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