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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갑식]우리가 놀란 한강과 김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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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갑식]우리가 놀란 한강과 김기민

김갑식 문화부장 입력 2016-05-27 03:00수정 2016-05-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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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문화부장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소설가 한강 씨·46) “연습하러 가야죠.”(발레리노 김기민 씨·24)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씨와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거머쥔 김기민 씨의 말이다.

최근 세계에 ‘신(新)한류’의 도래를 알렸던 이들의 소감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글쓰기든 춤이든 자신들이 ‘연습벌레’임을 드러낸 것이다. 김 씨의 경우 동아일보 기자와 연결된 시점이 새벽이었다. 시상식이 열렸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5시간 걸려 집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그에게 “힘들 테니 좀 쉬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란다.


큰일을 한 만큼 좀 쉬어도 될 터이지만 한 씨의 대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인터뷰 곳곳에는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 읽고 쓰는 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평상의 삶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이번 쾌거는 시쳇말로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듯한 두 예술인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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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도 눈에 띈다. 한 씨는 “조용히 묵묵하게 자신의 글을 쓰시는 분들의 훌륭한 작품도 읽어주시면 좋겠다”, 김 씨는 “안내자 없이 길을 가면 힘들잖아요. 세계 발레계에서 뒤에 따라올 후배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한류(韓流)=대중문화’라는 공식을 깼다는 점이다. 그것도 세계정상에 오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온 장르에서 얻은 성취다. 이들이 속한 문학과 발레계는 한류와 거리가 멀다. 한류 하면 케이팝과 영화, 드라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10대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연예인이 선두를 다투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시인과 소설가 등 문인, 또는 발레와 전통무용 등 무용인이 상위에 오른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어로 표현되는 문학은 그동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상실감을 준 장르였다. 매년 10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때마다 고은 시인의 자택 주변에 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게 언론의 연례행사였다. 우리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좋은 번역자가 그 숙원을 풀 수 있는 열쇠의 하나였다. 앞으로도 문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해법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발레, 그중에서도 발레리노의 세계는 어떤가? “범아, 발레 한번 해 보자.” 전성기 시절 ‘발레리노의 교과서’로 불린 이원국 씨에게 그의 어머니가 던진 말이다. 범은 어릴 때 그의 이름이다. 춤은 학창 시절 집안에서 내놓은 문제아를 보다 못한 어머니의 마지막 제안이었다. 춤이라도 춰서 대학에 가라는 의미였다.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다지만 아직도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이런 풍토에서 한국 발레는 기적을 이뤄냈다. 2006년 김주원 성신여대 교수의 같은 상 최고 여성 무용수상 수상에 이어 꼭 10년 만이다.

어쩌면 우리를 더 깜짝 놀라게 한 두 예술인의 수상은 한류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문화 융성을 4대 정책 기조의 하나로 내세운 정부는 그동안 한류를 대중스타를 앞세운 돈벌이와 벤처,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만 여겨온 것은 아닌지? 한류의 비즈니스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몸이 그렇듯 기초가 약하거나 균형을 잃은 문화 편식은 문화를 망칠 수 있다. 더디고 힘들어도 예술의 원천인 문학, 나아가 공연계에 꾸준히 투자해야 지속 가능한 한류의 꽃을 피울 수 있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한강#김기민#발레#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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