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행 ‘화평법’ 그냥 두면 제2의 옥시 사태 또 터질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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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2012년 초안은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유해물질의 용도를 바꾸려면 반드시 유해성 평가자료를 사전에 내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규제개혁위원회가 업계 부담을 이유로 삭제를 권고한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에서 드러났다. 2015년부터 시행된 화평법에 이 조항이 빠진 이유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카펫 세척제로 쓰이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가습기 살균제용으로 바꿔 146명(정부 집계)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화평법의 이런 허점 때문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주 환경독성보건학회와 한국환경보건학회가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도 현행 화평법으로는 제2의 옥시 사태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된 화평법의 골자는 신규 화학물질은 모두, 기존 화학물질은 1t 이상 제조·수입할 때 등록하도록 한 것이다. 옥시의 경우 2001∼2011년 판매한 옥시싹싹에 사용된 독성물질 PHMG의 연간 사용량이 300kg 정도에 불과해 등록 사각지대에 있다.

더구나 법안 논의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투자를 어렵게 하는 ‘망국법’이라고 반발하자 정부는 ‘완제품’을 신고에서 제외하도록 대폭 완화해 주기까지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경제가 엉망인데 환경을 지키자고 하면 돈키호테 같다”며 “법안 시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위 법령의 몫인 만큼 (시행령 확정 과정에서) 기업에 무리한 내용은 마사지(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옥시 사태로 생활화학용품에 대한 국민의 공포심이 커지자 이달 초 환경부는 살(殺)생물제와 방충제 소독제 방부제를 2년 동안 전수조사하고 살생물제 관리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화평법 시행 이후 넘겨받은 15종의 생활화학용품을 빼곤 인력과 시설 부족 때문에 관리 못한다고 손들었던 환경부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환경부는 옥시 사태를 인력과 예산이나 늘리는 데 이용할 것이 아니라 화평법부터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화평법#규제개혁위원회#옥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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