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승리 기여도를 믿지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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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중계 자막에서 WAR를 보게 됐습니다.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를 줄인 말이라고 하더군요. 팬 커뮤니티에서도 선수 비교 때 많이 쓰던데 얼마나 믿을 만한가요?” ─ 독자 전수희 씨

의문을 품는 게 당연합니다. WAR는 계산 과정에서부터 무슨 밀교(密敎·해석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경전)를 보는 듯합니다.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WAR는 계산하는 사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옵니다. 제가 WAR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장 유명한 야구 기록인 타율이나 평균자책점은 누가 계산하든 결과가 똑같습니다. 한 사람이 계산하면 0.300인데 다른 사람이 계산하면 0.235밖에 안 된다면 ‘타율을 믿지 마세요’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겁니다.

그런데 WAR는 저 정도 차이가 나옵니다. 메이저리그 기사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WAR는 크게 세 가지. 베이스볼레퍼런스(www.bbref.com·bWAR),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www.baseballprospectus.com·WARP), 팬그래프스(www.fangrahps.com·fWAR)에서 각자 다른 WAR를 내놓습니다.

1977∼1994년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한 잭 모리스(61)의 통산 기록으로 차이를 확인해 볼까요? bWAR는 43.8인데 WARP는 54.1, fWAR는 55.8입니다. 단순 비례로 계산해 WAR 55.8이 타율 0.300이라면 WAR 43.8은 타율 0.235입니다.

한국 프로야구 WAR를 제공하는 사이트 두 곳도 비슷합니다. 한 사이트는 KIA 양현종(28)의 최근 3년(2013∼2015년) WAR를 15.7이라고 계산한 반면 다른 사이트는 11.0으로 계산합니다. 평균자책점으로 단순 환산하면 3.00과 4.28의 차이입니다.

WAR 계산에 쓰는 세부 기록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일입니다. WAR를 계산할 때는 기본적으로 타격(투구)과 주루, 수비 기록을 종합해 최종 결과를 내놓습니다. 가장 논란이 생기는 건 수비 기록입니다. 베이스볼레퍼런스는 DRS(Defensive Runs Saved),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는 FRAA(Fielding Runs Above Average), 팬그래프스는 UZR(Ultimate Zone Rating)이라는 지표를 각각 반영합니다. 수비 기록은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고, 세 사이트 모두 자기 기록이 제일 정확하다고 주장하니 “기준을 통일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갈수록 WAR 이야기가 많이 들립니다. 기사나 TV 중계에 WAR가 등장하는 게 이제 드물지 않은 일이고, 한 기업체에서는 WAR를 기준으로 매달 프로야구 최고 선수를 뽑아 시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건 어쩌면 야구팬이 ‘나라비(竝び·한 줄 세우기)’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WAR는 포지션에 관계없이 심지어 투수와 타자도 구분하지 않고 “A가 B보다 이만큼 더 나은 선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꼭 이렇게 ‘WAR로 보니 누가 최고’라는 논쟁을 해야 할까요? 저도 누구 못지않게 한 줄 세우기를 좋아하지만 동시에 야구팬으로 산다는 건 기록이 다 보여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요컨대 숫자는 절대 ‘팬심’의 영역을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WAR가 높은 선수일수록 더 좋은 선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테면 제 응원 팀의 4번 타자 출신인 김경기 SK 퓨처스리그(2군) 감독보다 ‘적장(敵將)’이던 양준혁 MBC 해설위원의 WAR가 3배 정도 더 높고 실제로도 양 위원이 더 좋은 선수였을 겁니다. 외계인 야구팀이 침공해 ‘역대 프로야구 올스타 팀을 꾸려라. 우리와 맞붙어서 너희가 이기면 그냥 물러나고 아니면 너희를 다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면 저 역시 김 감독보다 양 위원이 들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떨리는 심정으로 운명이 걸린 경기를 지켜보며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외칠 겁니다. “WAR 따위가 무슨 상관이람? 그래도 김경기가 최고”라고 말입니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승리기여도#war#war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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