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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명인열전]‘광주 1백년’ 쓴 구순의 향토사학자… “애향심으로 광주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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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명인열전]‘광주 1백년’ 쓴 구순의 향토사학자… “애향심으로 광주 지켜”

이형주 기자 입력 2016-05-09 03:00수정 2016-05-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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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박선홍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
박선홍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이 4일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광주 1백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광주가 발전하게 된 원동력은 교육도시라는 경쟁력에 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도시는 흔히 생성되고 발전하다 쇠퇴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비유된다. 광주는 면적 501km², 인구 147만 명으로 호남 최대 도시다. 광주는 백제 땐 무진주(武珍州),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주(武州)로 불렸다. 고려 태조(940년) 때 광주로 개칭된 2000년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시민들은 대부분은 도시 속에 스며든 생명력이나 애환, 낭만에 대해 잘 모른다. 박선홍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90)은 광주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광주의 삶과 감춰진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광주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각종 서적 1000여 권을 펴낸 그는 “책을 발간할 때면 아이를 낳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며 “살아 있는 동안 책을 계속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구순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향토사랑의 열정이 느껴졌다.

○애향심 하나로 광주를 지킨 어른

4일 오전 9시 박 이사장은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6층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사무실로 출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신문, 잡지, 각종 서적 등을 뒤적였다. 오후 6시 귀가하기 전까지 그는 광주와 관련된 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돋보기를 쓰고 8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꼿꼿함에서 과거와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느껴졌다.

박 이사장이 1994년 쓴 ‘광주 1백년’은 개화기 이후 광주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책이다. 유적과 유물, 풍속, 사건과 사람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낸 그의 대표작이다. 2012년 ‘광주 1백년’의 지식재산권을 광주문화재단에 넘기고 내용을 보강해 지난해 12월 재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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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1백년’을 썼다고 일부에서는 (나를) 향토사학자라고 하는데 과찬입니다. 고향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썼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근대 광주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어 광주학 백과사전 또는 총서로 불리는 ‘광주 1백년’을 쓸 수 있었던 저력은 뭘까. 바로 애향심이었다.

그는 1926년 광주 동구 충장로 5가의 한 주택에서 태어났다. 당시 충장로 1∼2가에는 일본인이, 충장로 4∼5가에는 조선인이 살았다. 충장로 3가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포목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에게 충장로에 나가면 가게 이름을 적어오도록 했다. 수창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때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철도역을 모두 기록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그는 아버지의 ‘기묘한 교육’이 싫지 않았다. 이런 메모 습관은 평생 향토 사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힘이 됐다.

1945년 광복이 됐을 때 광주시청 산업과 직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했다. 민립 대학으로 설립된 조선대의 첫 입학생이 됐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밤에는 경제학도로 주경야독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후 42년간 광주상공회의소에서 지역경제를 챙겼으니 평생직장이나 다름없다. 보이스카우트 창립에 참여해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만들어 소외계층 돕기에 앞장섰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조선대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 정상화에도 힘을 보탰다. 그가 ‘광주의 어른’으로 불리는 이유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접했던 기록과 경험을 꼼꼼히 챙긴 것이 ‘광주 1백년’이라는 책이 세상의 빛을 보는 계기가 됐다. “광주는 사계절 기후가 뚜렷하고 어머니 품 같은 무등산이 있지요. 광주의 자랑스러운 것을 알리기 위해 ‘광주 1백년’을 썼지요.”

○ ‘광주 1백년’은 따뜻한 광주 이야기

세 권으로 구성된 ‘광주 1백년’은 총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이다. 1권은 1896년 광주읍성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남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도시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0년 광주읍성의 인구가 1만 명이었고, 현재 광주 동구 구시청(남문), 동부경찰서(동문), 학생회관(서문), 충장로 파출소(북문) 주변에 4대문이 있었다는 것도 알려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광주읍성은 철거됐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광주읍성 활터가 있던 사정리(射亭里)는 현재 광주 동구 궁동(弓洞)이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박 이사장은 옛 도시의 특성이 유전자처럼 곳곳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책을 뒤적이면 광주 송정리역에 1913년 호남선 철도가 처음 통과하고 1951년 미군 공병대가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훈련장을 지어 장교양성 기관인 상무대가 들어선 역사적 기록도 알 수 있다. 박 이사장은 “1960년대 일신방직, 전남방직 여공들이 외출해 충장로에 나오면 조용했던 상가에 활기가 돌았다”며 당시 방적산업의 역할도 전하고 있다.

2권은 광주의 풍류, 문화, 체육 등을 다루고 있다. 1908년 건립된 광주 최초의 공연장인 양명사가 현재 충장로 3가 중간에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양명사에서는 국악인들이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삼국지를 공연했다고 한다. 기생들이 1917년 광주에서 기생조합을 결성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 당시 기생조합은 단순한 향락문화의 공간이 아닌 기생 양성소인 동시에 전통예술 교육기관이었다. 일부 기생이 예술인이 되고 일부는 물산장려운동 등 애국운동에 많은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했다.

3권은 광주 동구 계림동 옛 광주시청 자리에 있던 경양방죽을 태봉산 흙으로 메운 이야기나 광주고 앞에 있었던 운천저수지 매립 반대 운동이 벌어진 사연을 적고 있다. 광주인권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백정들의 신분 해방 활동인 형평사운동과 ‘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던 박순이 충현원 원장, 향토기업인 금호그룹의 고 박인천 회장 등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생명력 넘치는 광주의 발전과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 속살을 경험했다. 그는 광주가 호남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100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교육 경쟁력을 꼽았다. “1900년대 초반 인구가 1만 명에 불과하던 광주가 150만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등 교육기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100년은 교육도시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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