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광고가 된 미술, 예술이 된 광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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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읽는 미술사/정장진 지음/340쪽·1만6800원/미메시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쾰른 기차역 천장에 그려진 폭 20m, 길이 40m의 아디다스 광고. 비주얼아티스트 펠릭스 라이덴바흐가 스페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당 천장화를 밑그림 삼아 제작했다. 저자는 “비대칭적인 연극적 구성의 바로크 회화를 차용한 데 디자이너의 미학적 배려가 숨어 있다”고 썼다. 미메시스 제공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쾰른 기차역 천장에 그려진 폭 20m, 길이 40m의 아디다스 광고. 비주얼아티스트 펠릭스 라이덴바흐가 스페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당 천장화를 밑그림 삼아 제작했다. 저자는 “비대칭적인 연극적 구성의 바로크 회화를 차용한 데 디자이너의 미학적 배려가 숨어 있다”고 썼다. 미메시스 제공
표지 이미지는 미국 팝 아티스트 멜 라모스(81)의 ‘치키타’(1979년)다. 라모스는 수십 년간 여성의 나체를 집중적으로 그려 왔다. 코카콜라 잔에 하반신을 담근 여성, 하인즈 케첩 병을 부둥켜안고 선 여성, 스니커즈 포장을 벗기며 알몸을 드러내는 여성…. 라모스의 아내는 한때 그의 누드화 모델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과 롯데 옥수수수염차 용기에 인쇄된 그림을 연결한다. 벌어진 옥수수 껍질 속에 옥수수 대신 비너스가 꽂혀 있는 그림이다. 1485년경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복판에서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밟고 선, 갓 태어난 바로 그 비너스다.

“옥수수수염차인데 옥수수 수염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휘날리는 비너스의 금발만 보인다. 이 차를 마시는 건 곧 비너스의 금발이 우러난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말일까.”

라모스의 수많은 누드화 중 1998년 작 ‘콘 퀸(Korn Kween)’은 옥수수 껍질을 벌리고 솟아오른 듯 선 여성의 나신을 그렸다. 지은이는 “옥수수수염차 용기 제작자가 라모스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아닌지는 알 길 없지만 두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은 부인할 수 없다”고 썼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년)를 영리하게 패러디한 디오르 광고. 회사 제품을 그림 소품으로 쓰고 남성 모델을 배제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년)를 영리하게 패러디한 디오르 광고. 회사 제품을 그림 소품으로 쓰고 남성 모델을 배제했다.
베끼기 의혹을 정색하고 지적하는 내용은 없다. 몇 해 전 제주도의 한 호텔이 지면 매체 광고에 자극적인 이미지로 변용한 비너스, 영화 ‘7년 만의 외출’(1955년)에서 지하철 환풍구 바람을 끌어안으며 나부끼는 치마를 살짝 붙들었던 ‘20세기 뉴욕의 비너스’ 메릴린 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에필로그에 밝혔듯 그저 “여러 사례를 통해 미술과 광고의 접점, 콘텐츠의 먹이사슬 이야기를 조금 만져 봤을 뿐”이다.

“20세기 중후반의 팝 아트는 신화적 이미지가 르네상스 시대에만 있었던 특이한 이미지가 아니라 미디어의 변화에 편승하며 약간씩 변형돼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려 줬다. 옥수수수염차 용기 위의 비너스나 바나나 껍질 속 비너스는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따라 한 아류나 모방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원형 이미지의 진화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남동쪽에서 관망하며 식사할 수 있는 유명 레스토랑 ‘투르 다르장’에서 촬영한 카뮈 코냑 광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남동쪽에서 관망하며 식사할 수 있는 유명 레스토랑 ‘투르 다르장’에서 촬영한 카뮈 코냑 광고.
집필 동기를 격정적으로 기술한 서문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오래전 대학 강의 중 영화 ‘E.T.’(1982년)의 포스터 이미지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1511년)에서 왔음을 수강생 대부분이 모른다는 것, 앵그르의 ‘샘’을 영상 자료로 보여 주자 학기말 강의평가서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를 학교에서 보여 줬다”는 항의가 적잖이 들어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부족한 미술 상식이나 누드에 대한 지나친 혐오에 놀란 게 아니다. 학생들이 미술에 대해 가진 구태의연한 관념 때문에 놀랐다. 비너스는 미디어와 함께 살 뿐 어디에도 없는 존재다. ‘미술’만 보면 보티첼리의 비너스만 보이지만 ‘이미지’를 보면 먼로도 보이고 그 후예인 광고 속 한국 여배우도 보인다. 이 흐름을 놓치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2도 인쇄로 모든 이미지를 파란색으로 처리해 이미지 윤곽과 검은색 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글아트프로젝트(google.com/culturalinstitute)를 열어 놓고 눈길 가는 이미지를 찾아보며 읽기를 권한다. 코냑 광고를 통해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넘어 52편의 ‘최후의 만찬’으로 체험을 확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의 제안대로 상상력(imagination)이란 단어 속의 이미지(image)에 주목해 보자.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광고로 읽는 미술사#정장진#카뮈 코냑 광고#마네#풀밭 위의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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