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어르신 돕는 ‘서초구 맥가이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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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교체서 세면대 수리까지 무료 출장 서비스
철물점 운영 4명 ‘핸디맨’ 재능기부… 주민은 은둔노인 발굴 ‘별지기’ 활동

서울 서초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문광식 씨가 지난달 29일 홀몸 어르신의 집을 찾아 화장실을 수리하고 있다. 서초구는 올해부터 홀몸 어르신에게 무료로 주택을 수리해주는 ‘출동! 핸디맨’ 사업을 시작했다. 서초구 제공
서울 서초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문광식 씨가 지난달 29일 홀몸 어르신의 집을 찾아 화장실을 수리하고 있다. 서초구는 올해부터 홀몸 어르신에게 무료로 주택을 수리해주는 ‘출동! 핸디맨’ 사업을 시작했다. 서초구 제공
서울 서초구의 한 연립주택 33m²(약 10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정모 씨(77·여)는 벌써 몇 달 전부터 화장실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세면대가 고장난 데다 불을 켤 때마다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정 씨는 주변 고물상에서 주워 온 플라스틱 의자를 방 한구석에 놓고 머리를 감았다. 화장실은 불도 못 켜고 문을 열어 놓은 채 사용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그냥 참고 지내던 정 씨의 집을 지난달 29일 문광식 씨(61)가 찾았다. 30년 동안 철물점을 운영해 온 문 씨가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다. 서초구는 올해부터 홀몸 어르신의 주택을 찾아 무료로 출장수리 서비스를 해주는 ‘출동! 핸디맨(handyman)’ 사업을 시작했다.

문 씨는 세면대 배관을 교체한 뒤 형광등을 살펴보더니 “큰일 날 뻔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등을 고정하는 기구가 삭아 정 씨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문 씨는 방 안 형광등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고 화장실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 타일도 붙였다. 그동안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느냐는 말에 정 씨는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 씨는 “앞으로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고쳐드리겠다”고 약속한 뒤 또 다른 집을 수리하러 떠났다.

문 씨를 포함한 서초구 철물점 4곳은 한 달에 한 번 핸디맨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반 주택이 밀집한 양재동, 방배동 일대가 단골로 찾는 곳이다. 재료비는 서초구 경제인협의회가 지원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핸디맨의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서초구 관계자는 “세입자 생활을 하는 어르신들은 여기저기 고장 난 곳이 생겨도 집세가 오를까 봐 수리해 달라는 말을 못 한다. 그러다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커 핸디맨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핸디맨들의 손길이 필요한 ‘은둔형 홀몸 어르신’을 제보하고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것은 동네 주민 ‘별지기’의 몫이다.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진모 씨(79)는 오랜 홀몸 생활로 낯선 사람을 꺼리지만, 부근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그를 지켜본 주민의 제보로 지난해 반찬 배달과 주거환경 개선 서비스를 받았다. 2014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동네 주민 162명이 별지기가 돼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 1030명을 제보했다. 이 가운데 326명은 쌀, 난방유 지원, 정기 안부 확인, 치매지원센터 연계 등의 혜택을 받았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사소한 보살핌 하나하나가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며 “외롭고 힘든 어르신이 없도록 뜻있는 재능기부자와 주민들의 더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초구#맥가이버#출장서비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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