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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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의 한 장면. Mnet 화면 캡처
‘프로듀스101’의 한 장면. Mnet 화면 캡처
박창규 사회부 기자
박창규 사회부 기자
지난해 말쯤일 겁니다. 우연히 TV에서 낯선 영상을 봤습니다. 같은 옷을 갖춰 입은 소녀들, 언뜻 보기에도 100명은 족히 될 법한 친구들이 군무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더군요. 초등학교 운동회 때 곤봉 돌리는 매스게임에서나 봤을까.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같은 몸짓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대체 저건 뭐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포털에 검색해보니 바로 뜨더군요.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올 초부터 방송할 ‘프로듀스101’ 출연자들이라고 알려줍니다. 참가자는 101명. 모두 여성 아이돌 데뷔를 꿈꾸는 친구들이랍니다. 그중 11명을 뽑아 1년간 활동할 ‘국가대표 걸그룹’을 결성하는 게 취지라고 합니다.

출연자들이 선보인 곡 제목은 ‘픽 미(Pick Me)’, 말 그대로 “나를 뽑아 달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고강도 훅(hook) 송은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대체 노래에 ‘픽 미’ 가사가 몇 번 나오나 궁금해 세어봤습니다. 50번 등장하더군요.

노래와는 별개로 연예기획사 연습생을 모아놓고 걸그룹 멤버를 뽑는 오디션은 좀 과해 보이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갑론을박이 넘쳐났습니다. 프로듀스101 참가자들도 점점 좁혀오는 순위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처음엔 101명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35명만 남았습니다.

방출되지 않으려면? 시청자의 눈에 들어야 합니다. 이들을 남길지, 아니면 내보낼지를 결정하는 건 시청자의 득표수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진행자인 배우 장근석은 항상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라고 외칩니다.

많은 지지를 얻은 연습생이 살아남는다는 룰. 언뜻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SNS나 블로그에는 불공정하다는 불만이 줄을 잇습니다. JYP 같은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이 오래, 그것도 여러 번 화면에 노출되는 반면에 어떤 연습생은 고작 1, 2초 얼굴을 비치고는 끝이거든요. ‘악마의 편집’ 논란도 여전합니다.

사실 불공정한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TV프로그램은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프로듀스101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건 허구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겠지요. 대형 기획사 소속이거나 속칭 ‘얘기되는’ 캐릭터가 아니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화면을 차지하기 어려운 현실. 마치 ‘금수저’를 물고 나온 이가 좀 더 좋은 직장과 미래를 보장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문제는 이를 지적하는 시청자 역시 자신도 모른 채 ‘비난의 링’에 뛰어든다는 점입니다. 실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금요일 밤이면 등장인물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하는 만큼 비방도 넘쳐납니다.

누군가 다른 연습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 바로 SNS에는 ‘쟤, 싸가지 없다’ ‘인성이 덜 됐다’는 반응이 줄을 잇습니다. 또,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이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 다른 연습생을 비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보기 싫다며 욕을 퍼붓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누군가를 ‘왕따’시키듯 말입니다.

경쟁에서 이긴 연습생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겁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밀어내고 살아남았지만, 다음 날엔 또 다른 경쟁이 펼쳐지고 자신도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불러올 테니까요. 연습생 상당수는 10대. 어린 나이에 긴장감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보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게임에 참여한 선수들만 내상을 입는 형국입니다. 미생(未生)에게 너무 가혹하지는 않은지요. 아무리 훗날 부와 명예가 보장된다 해도요. 불공정한 현실과 판박이 같은 프로듀스101. 그 속에서 피땀 흘리는 연습생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 투표할 한 명을 고르기란 더욱 어렵기만 합니다.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프로듀스101#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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