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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면죄부… 술냄새 풀풀나도 단속 안걸려 다시 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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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 면죄부… 술냄새 풀풀나도 단속 안걸려 다시 핸들

박성민기자 , 정성택기자 입력 2016-02-25 03:00수정 2016-03-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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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2>음주단속 기준 0.03%로 “한두잔 쯤…” 불감증 《 “저 그럼 안 걸린 건가요? 감사합니다!”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경찰관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음주가 감지돼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한 결과 단속 기준인 0.05%보다 낮게 나온 운전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측정 직전까지 불안해하던 운전자들의 표정은 수치를 보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바뀐다. 차량에서 내릴 때만 해도 경찰관에게 “다음부터 절대 술 마시고 운전하지 않겠다”고 사정하던 운전자들은 ‘면죄부’를 받았다는 듯 태연히 운전대를 잡는다. 0.05%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 조치 없이 풀려난 운전자들은 ‘이 정도 마시면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층 용감해진다. 단속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습범’으로 변해 간다.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음주단속 기준이 ‘잠재적 음주사고 가해자’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

○ 여성 운전자 음주사고도 대폭 늘어


19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강동구 길동 네거리 인근. 편도 3차로의 2개 차로를 막고 경찰의 음주단속이 시작됐다. 유흥가인 이 지역은 밤늦은 시간에도 취객들이 붐비는 곳이다. 11시를 넘자 집에 가려는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고 음주운전 적발도 속출했다. 11시 30분부터 약 40분 사이에 적발된 음주운전자는 7명. 이 가운데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하는 3명이었다.


윤모 씨(31)는 3명 중 한 명이었다. 간이 음주측정에서 술을 마신 걸로 나오자 경찰관은 정식 측정을 요구하며 차량을 인도 쪽 길가로 천천히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윤 씨는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급하게 운전대를 꺾다가 경찰관의 제지를 받았다. 자칫 옆 차로에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갔으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찔한 위기를 넘긴 뒤 윤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한 결과 0.037%였다. 윤 씨는 곧이어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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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김모 씨(31)도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 두어 잔만 마셨는데 걸렸다”고 말했지만 말투는 꼬여 있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29%로 나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다시 운전석으로 향했다. 경찰관이 겨우 설득해 대리운전을 부르게 했다. 이금환 강동경찰서 팀장은 “단속 기준을 낮추거나 아니면 기준에 미치지 않은 음주운전자를 벌점 등으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운전자들이 술을 입을 대면 아예 운전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경각심이 최근 갈수록 둔감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망자는 583명으로 전년보다 9명(1.5%)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직전 2년 동안 10% 이상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정체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음주단속 기준을 0.03%로 낮출 경우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를 300명가량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비행기나 선박 운전자는 음주단속 기준이 0.03%다. 여성 운전자의 음주 사고를 막기 위해서도 단속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여성 음주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전년보다 10.3%나 늘어났다.

○ 단속기준 낮추자 사망자 4분의 1로 줄어

음주운전 단속 기준 강화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인다는 건 이미 해외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16년 전만 해도 일본의 음주운전 사망자 수는 1276명. 당시 1217명의 한국과 비슷했다. 골머리를 앓던 일본 정부는 2002년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혈중 알코올 농도 0.05%에서 0.03%로 낮췄다. 처벌 수위는 높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3∼0.05%인 운전자가 사고를 내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만 엔(약 5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했다. ‘과실치사상죄’ 대신 ‘위험운전 치사상죄’를 도입했다. 국민들에게 ‘음주는 과실이 아닌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2002년 음주운전 사망자는 1000명 아래로 내려갔고, 2009년부터는 연간 300명을 밑돌고 있다. 10년 만에 사망자 수를 4분의 1로 낮춘 것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음주운전 사망자 비율은 6%대에 머물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한국의 음주운전 사망자(583명) 비율은 12.6%에 이른다. 최근에는 음주운전에 비교적 관대했던 나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경우 50년 만에 0.08%인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단속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가 기준인 캐나다는 운전 경력이 2년 미만이거나 20세 미만 운전자(0.01%)는 술을 입에만 대도 운전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스페인(0.08%)과 뉴질랜드(0.05%)도 경력 2년 이하 운전자에 한해 단속 기준을 0.03%로 강화했다. 운전을 처음 시작하는 시기에 ‘음주운전은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정성택 neone@donga.com·박성민 기자
#음주운전#교통사고#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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