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만의 만남… “우리는 형제” 교황-러 정교회 총대주교 쿠바회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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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년 동-서방교회 분열이후 처음… 화해-불평등 해소 등 공동성명
美잡지 “종교 넘은 정치적 사건”

“우리는 형제이지 경쟁자가 아닙니다. 신(神)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범죄는 없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종교 지도자의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2일(현지 시간) 오후 쿠바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접견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정교회 수장(首長)인 키릴 총대주교가 반갑게 포옹하며 양 볼에 입을 맞췄다. 거의 1000년 만에 이뤄진 로마 교황과 러시아정교회 수장의 역사적 만남에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감격 어린 기쁨이 가득했다.

가톨릭 최고 수장인 교황과 동방정교회 수장인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의 만남은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1054년 상호 파문하면서 갈라선 이른바 ‘교회 대분열’ 이후 처음이다. 2시간 동안 이뤄진 양 교회 수장의 역사적인 만남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중재로 성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멕시코 방문 길에 잠시 쿠바에 내려 쿠바를 공식 방문 중인 키릴 총대주교와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같은 세례를 받은 형제”라고 말했고, 키릴 총대주교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회동을 마친 뒤 총 30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교황과 총대주교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기독교인들이 극단주의자들의 박해에 시달리는 현실에 우려를 나타내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또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사람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도는 난민들과도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동방정교회의 영적 중심지는 현 터키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이다. 그러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에 함락되면서 정교회 중심이 사실상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세계 동방정교회 신자 2억5000만 명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러시아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14일 두 교회 수장의 만남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정치적’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FP는 우선 두 사람이 만난 장소가 쿠바라는 점에 주목했다. 가톨릭 국가이면서도 옛 소련과 친했던 쿠바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이후 동서 간의 신(新)냉전을 중재할 적임자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13일 독일 뮌헨 국제안보회의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정교회 키릴 총대주교의 1000년 만의 만남은 국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동서 간 대화’의 빛나는 예”라고 찬사를 보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교황#정교회#가톨릭#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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