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기자의 야구&]‘투고타저’ 내셔널리그의 고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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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했다. 100년이 훌쩍 넘은 야구의 역사도 유사하다. ‘타자(공격)와 투수(수비)의 균형’이라는 절대명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을 되풀이해 왔기 때문이다. 2016년 신년벽두부터 야구 종주국 미국을 달구고 있는 ‘지명타자’ 제도 논란의 배경이기도 하다.

야구 공식 규칙 탄생 128년 만인 1973년 미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제도가 탄생했다. 내셔널리그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아메리칸리그에서 ‘지명타자’ 제도를 전격 도입한 것이다. 지명타자는 배트 솜씨가 서툰 투수를 대신해 타석에 서는 일종의 ‘전문 공격수’로, 야구 교본에는 없던 새로운 보직이었다.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는 이를 ‘최대 개혁’으로 묘사했지만 실상은 ‘궁여지책’이었다. 당시 아메리칸리그는 심각한 ‘투고타저’로, 경기 스코어가 거의 1-0, 2-0이었다. ‘공격은 관중을 부르고, 수비는 우승을 부른다’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말처럼 공격력이 실종된 상품은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아메리칸리그 관중 수는 내셔널리그에 비해 200만 명이나 적었다. 마운드를 낮추고, 스트라이크존을 좁혀도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8년 아메리칸리그에서 다승왕은 무려 31승이나 거둔 반면 타격왕의 타율은 0.301에 불과할 정도로 투고타저는 더 기승을 부렸다.

아메리칸리그는 관중을 되찾기 위해 내셔널리그와 교류전(인터리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아쉬울 것 없던 내셔널리그는 단칼에 거절하며 그들만의 리그에 몰두했다. 아메리칸리그에 남은 건 야구의 근간을 흔드는 ‘지명타자’ 제도뿐이었다.

새로운 제도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아메리칸리그의 평균 타율은 지명타자 제도 도입 직전 4년간(1969∼1972년) 0.246으로 내셔널리그(0.252)에 비해 0.006이 뒤졌다. 하지만 이후 전세가 역전돼 1985∼1988년에는 0.263으로 내셔널리그(0.253)보다 0.01이나 앞서게 됐다. 타격이 활발해지면서 관중 성장세도 내셔널리그를 압도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내셔널리그도 1980년대 초 지명타자 도입을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12개 구단이 지명타자 안건을 놓고 표결에 부쳤지만 반대표가 조금 더 많아 무산됐다. 찬성표를 던졌던 모 구단 단장은 이 때문에 해고됐을 정도로, 그때만 해도 정서적 거부감이 컸다. 이후 지명타자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약물의 시대’와 함께 홈런이 속출하면서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현상이 리그를 장악한 것이다. 흥행을 위해 메이저리그가 약물을 어느 정도 묵인해 줬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타격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약물의 시대가 저물고 빅리그는 어느새 ‘투고타저’가 주름잡고 있다. 구단들이 지명타자 제도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또 메이저리그 수뇌부도 전임자들이 그랬듯 지명타자 제도와 함께 스트라이크존 축소 등도 함께 언급하고 나섰다. 1970년대 아메리칸리그 풍경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지명타자 제도를 완성하겠다던 메이저리그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반대 여론에 밀려 “당분간 현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일단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투고타저가 올해도 해소되지 않는다면 논란은 부활할 것이다. 야구의 역사는 투타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빙하기와 해빙기를 반복해온 생존 과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윤승옥 기자 touch @donga.com
#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투고타저#지명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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