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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퇴근길, 정든집서 딱한잔” 30년 추억 달동네 사랑방 ‘아포’ 문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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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퇴근길, 정든집서 딱한잔” 30년 추억 달동네 사랑방 ‘아포’ 문 닫는다

김도형기자 , 이지훈기자입력 2016-01-28 03:00수정 2016-01-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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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로 불리던 서울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촌이 40여 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26일 밤 한 포장마차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행운 옛집 주연배우 우동1번지 정든집 작은거인 퇴근길…. 어둠이 깔리자 30년을 지켜온 낡은 이름들에 차례로 불이 켜졌다. 23일 밤 서울 마포구 아현초교 뒤 굴레방로에선 학교 담벼락에 등을 기댄 ‘아현동 포장마차’가 어김없이 영업을 시작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이날 36세 동갑내기 손님 5명은 ‘옛집’에 둘러앉았다. 손때 묻어 끈적이는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주인 김모 씨(75·여)와 손님들은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다. 사장님 대신 ‘엄마’ ‘이모’로 불리는 김 씨는 핏물 고인 꽁치와 돼지고기, 물이 흥건한 꼬막으로 안주를 만들고 있었다. 10m² 남짓한 포차가 몇 달 뒤 사라진다는 사실 탓인지 단골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달에 두 번 꼭 찾아온다는 손님 강모 씨는 “흑백사진 혹은 오래된 일기장 같은 추억의 장소인데…”라며 소주잔을 들었다.

‘아포’라고 불리던 아현동 포장마차촌이 없어진다. 16곳 중 4곳이 폐업했고 나머지도 6월까지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처지다. 재개발의 여파다. 아포는 ‘아현동 산7번지’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애오개 언덕 산동네가 다세대주택 사람들로 복작거릴 때 아포도 함께 흥했다. 이 동네 주민들과 떠난 주민들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를 찾아온 술꾼들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전 6시까지 영업하는 포차가 많았다.


그러나 동네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현동과 북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수천 가구 아파트에 새 이웃이 들어와 하루 150명씩만 우동을 팔아주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4년 말부터 포차촌 앞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한 이웃들은 아포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통행에 불편하다거나 미관상 좋지 않다며 일부는 구청을 찾아가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시위까지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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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포가 자리 잡은 곳은 ‘선통물천’이란 하천이 있던 곳. 1960년대 복개 이후 주민들이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던 곳에 리어카를 끌고 와 술과 음식을 판 것이 아포의 시작이다. 1991년에는 상인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나무판자 노점을 만들었고 1999년 다시 공사를 해 컨테이너 상점이 됐지만 이 땅은 엄연한 국공유지다. 포차 존재 자체가 불법인 것이다. 상인들이 세금이라고 여기며 면적에 따라 매년 17만∼104만 원씩 낸 돈은 인도 불법 점유에 따른 변상금이었다. 마포구 관계자는 “상인들의 생계를 생각해 그동안 변상금만 받아왔지만 민원이 빗발쳐 묵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6월 말까지 자진 퇴거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23일 밤 불을 켠 포차의 주인은 50대 2명, 60대 4명, 70대 5명, 80대 1명이다. 대부분 6월 이후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32년째 ‘강타 이모네’를 운영하는 전영순 씨(69·여)는 “우리가 집값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이 나이에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행운’의 주인 송모 씨(86·여)는 당장 월세 20만 원이 걱정이다.

아포가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짱이네’ 주인 양모 씨(69·여)가 자신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1988년 인창고 다닐 때부터 여기서 술 먹던 애들이 여덟 명 있어. 명절만 되면 ‘고모 힘들게 일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10만 원씩 주던 녀석이 늦장가를 가더니 몇 달 전엔 찾아와 ‘나 애 아빠 됐어’라고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김도형 dodo@donga.com·이지훈 기자
#아현동#포장마차#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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