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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가볍고 단단한 차체’ 만들기 35년… “틈새시장 공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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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가볍고 단단한 차체’ 만들기 35년… “틈새시장 공략해야죠”

이형주 기자 입력 2016-01-11 03:00수정 2016-01-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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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서혁종 한국차량공업 공장장
35년간 자동차 차체 만드는 데 몰두한 서혁종 공장장이 8일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본사 공장에서 차체 완성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997년 광주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다. 광주 경제의 큰 기둥이던 기아자동차가 부도나면서 지역 하청업체들이 연쇄 도산을 했다. 업체들의 도산 여파로 지역경제는 침체됐다. 당시 광주지역 기아차 1차 협력업체 15곳 중 13곳의 주인이 바뀔 정도였다.

광주지역 기아차의 차체 납품업체였던 한국차량공업㈜(당시 서울차체공업㈜)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하지만 한국차량공업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도약시켰다.

서혁종 한국차량공업 공장장(59)은 한국차량공업 직원들과 함께 35년간 ‘더 가볍고 더 단단한 자동차 차체 개발’에 몰두한 기술자다. 세계 최고의 차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서 공장장의 이야기와 꿈을 들어봤다.


서 공장장은 1978년 광주공고를 졸업한 뒤 1980년 조선대 기계학과 야간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병역특례로 한국차량공업 전신인 서울차체공업에서 일을 했다. 그 당시 서울차체공업 공장은 현재 광주 서구 내방동 기아차 광주공장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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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차체공업은 기아차에 연간 차체 5000대를 납품하며 어렵지 않게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나 서울차체공업은 기아차 1차 협력회사답게 철판을 자르고 용접, 도장, 조립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서 공장장은 서울차체공업에서 병역 의무를 마치고 1984년 직원으로 입사해 공장장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격랑은 서 공장장이 생산부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기아차 부도라는 파고로 들이닥쳤다. 직원 220명의 월급이 밀리거나 퇴직금을 주지 못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서 공장장을 비롯해 생산직원들은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직원들과 논의한 끝에 야간작업을 없애고 낮에 모든 작업을 끝내면 불필요한 임금 지출을 줄이고 전기 등 고정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서 공장장은 직원들은 물론이고 노조까지 회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당시의 살아남으려는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 공장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2000년 한국차량공업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공장 전체를 인수했다. 현재 한국차량공업 조광철 대표이사(61)는 당시 구매영업부장이었다.

서 공장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힘든 시기였지만 2002년 한국차량공업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이 무한경쟁 시대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라 판단한 것이다. 현재 한국차량공업 직원 330명 가운데 20명은 기술연구소 연구원이다. 회사 매출액 4∼5%는 연구비에 투자하는 것이 회사의 전통이 됐다. 서 공장장은 2004년 부사장이 돼 한국차량공업 기술력 확보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한국차량공업은 18년 동안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종 트럭, 건설장비, 군수장비의 운전석, 짐칸은 물론이고 장갑차까지 총 50여 종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한국차량공업은 현재 자동차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연간 각종 차체 9만 대를 생산하는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차체는 자동차 총생산비용의 30%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차체 시장은 친환경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연료를 적게 쓰고 멀리 갈 수 있는 강판을 선호하고 있다. 기존 철재보다 얇고 무게는 가벼운 반면 단단한 재질과 구조를 갖도록 요구해 스테인리스, 경합금 등의 자재를 쓰고 있다. 차체 생산도 레이저가 강판을 자르면 로봇이 용접을 하고 기계장치가 도장을 하는 자동설비로 변모하고 있다.

서 공장장은 이 같은 세계 차체 시장의 흐름을 읽었다. 서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차량공업 직원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 기아차 1∼1.4t 트럭 짐칸을 만들고 있다. 또 스웨덴 볼보, 스카니아, 일본 이스즈 덤프트럭의 적재함을 제조하고 있다.

한국차량공업은 특히 군용트럭, 제독차, 앰뷸런스, 통신차량 등의 운전석과 적재함 등도 제작해 자주국방에도 기여하고 있다. 또 대형 굴착기, 엔진탱크 등도 생산하고 있다. 한국차량공업은 장갑차를 동남아시아 국가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서 공장장은 8일 광주 평동산업단지 본사 공장에서 인도네시아로 수출하는 12인승 장갑차 56대를 조심스럽게 보여 줬다. 한국차량공업의 기술력이 집약된 이 장갑차를 소개하면서도 행여 회사의 기술력이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했다.

이 장갑차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뛰어난 방탄 성능을 비롯해 화생방, 화재 방어 기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갑차의 대당 수출 가격은 4억여 원으로 총수출 단가는 240억 원 규모에 달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대형 군수회사의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서 공장장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서 공장장에게 광주지역 사회의 바람인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가능성을 물었다. 그는 광주는 기아차가 인수한 아시아자동차가 1965년 설립된 자동차도시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자동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 재건 방안의 하나로 국내 자동차 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설립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뿌리를 내렸다.

서 공장장은 광주는 반세기 전 자동차산업이 뿌리내려 잠재적 기술·인력 기반이 든든하다고 분석했다. 광주는 또 2013년부터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도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광주의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 열쇠는 자동차 회사의 투자와 인기 차종 생산이라는 견해도 내비쳤다. 그는 특히 자동차 100만 대 생산도시의 성공 조건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남미보다 적은 생산비와 좋은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과 가격으로 친환경자동차를 생산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생산단가를 낮추고 좋은 기술력을 가지려고 좀 더 많은 노력을 한다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앞선 경쟁력을 확보할 것 같아요.”

반평생 이상을 자동차 외형 생산에 몰두한 서 공장장은 적은 비용과 높은 기술력을 토대로 가볍고 튼튼한 차체를 끊임없이 만들고 싶어야 하는 엔지니어였다.
■취재를 마치며

“우수한 인력이 좋은 제품 만든다” 회사발전 일등공신은 기업문화

한국차량공업에는 사연회라는 직원들의 친선 모임이 있다. 사연회 명칭은 ‘회사가 인연이 된 모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97년 기아차 부도에도 근무했던 직원 220명 중 200명이 회사에 그대로 남아 일했다.
직원 200명은 회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데 온 힘을 모았다. 당시 회사 재건에 힘을 썼던 직원 200명 중 30명은 정년퇴직을 했고 170명 정도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 이들 170명 중 상당수는 시연회 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차량공업은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회사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직원들은 물론이고 노조도 생산원가를 줄이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하나가 됐다. 한국차량공업은 현재 광주 광산구 평동산업단지와 하남산업단지에 공장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280억 원으로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발전했다. 올해 신입사원 6명을 뽑는 데 600명이 지원해 1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혁종 공장장은 한국차량공업이 기사회생을 넘어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생산조직 문화가 있어 가능했다고 했다. 우수한 기능 인력이 좋은 제품을 만들려는 건전한 생산 활동이 있는 기업문화가 회사 발전의 일등공신이었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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