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도 저마다의 반짝거림 갖고 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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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문학동네소설상 ‘소각의 여왕’ 펴낸 이유 작가

소설 ‘소각의 여왕’을 낸 작가 이유 씨는 “쓸모없는 것들을 통해 삶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소설 속 고물상과 유품정리사, 소설가가 닮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소설 ‘소각의 여왕’을 낸 작가 이유 씨는 “쓸모없는 것들을 통해 삶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소설 속 고물상과 유품정리사, 소설가가 닮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고 믿었다. 중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책을 인공호흡기처럼 끌어안고 살았다. 직장을 구하기 쉽다고 해서 수학과를 선택했고 졸업한 뒤 수학 교재 만드는 출판사를 다녔지만 한순간도 작가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 꿈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신춘문예를 통해 이뤄졌다. 5년 뒤 그는 문학동네소설상에 도전했다. 은희경 씨의 장편 ‘새의 선물’, 김언수 씨의 ‘캐비닛’, 천명관 씨의 ‘고래’ 등 한국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장편들을 배출해 낸 문학상이다. 그 상이 최근 3년 동안 수상작을 내지 못해 장편 기근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

올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소각의 여왕’(사진)을 출간한 소설가 이유 씨(46)를 최근 만났다. 작가는 이른 아침 고3 딸을 챙겨주고 분주히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작가의 꿈을 끝내 이뤘던, 1회 수상자 은희경 씨가 떠올랐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자 장편에 도전한 과정도 흡사했다.

‘소각의 여왕’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과 유품정리사인 그의 딸 해미의 이야기다. 고물상과 유품정리사 모두 버려진 것들을 다루는 일이다.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물품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다. 작가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저마다의 반짝거림을 갖고 있다”면서 “그걸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학적인 메시지와 달리 서사가 속도감 있다고 하자 그는 “장르물을 좋아한다. 장르소설 스타일로 쓴 게 많다”며 웃음 지었다. 재미도 염두에 뒀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야기는 다양한 사연들의 연속이다. 해미는 자살 예고 후 자신의 방 정리를 부탁하는 청년, 남편의 유품에 남겨진 혈흔을 지워달라는 임부 등을 만나게 된다.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뒷얘기도 있다. “공모 마감 하루 전인데 자신이 없어 도저히 작품을 못 내겠더라고요. 작품 소재처럼 작품이 쓰레기 같은 건 아닌지 무척 고민했어요. 인터넷으로 계속 자료를 열람했던 유품정리사를 직접 찾아갔어요. 하루 전에!”

그는 “정말 괜찮은 ‘틈새시장’에 종사한다”던 유품정리사를 3시간 넘게 만나며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유품정리사의 개인적인 아픈 과거를 작가가 잠시나마 붙잡았던 것.

“유품정리사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두운 과거였어요. 자세히 물을 수 없었지만…. 작가라는 게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소설이란 게 그걸 보여주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 씨가 마음을 추슬러 작품을 낸 계기다. 덕분에 올해 한국문학은 선도 높은 장편을 하나 갖게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소설가#이유#소각의여왕#문학동네소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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