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강남 사대부들은 왜 대일통을 돕게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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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어디인가/양녠췬 지음·명청문화연구회 옮김/804쪽·3만6000원·글항아리

기자는 올 여름 청나라 융성기를 이끈 강희제(재위 기간 1661∼1722년)를 소재로 한 공연 ‘정성왕조(鼎盛王朝) 강희대전(康熙大典)’을 중국 청더(承德)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강희제의 영토 확장 등 업적을 약 10개의 막으로 나눠 공연했는데 ‘강희제가 강남 지방의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내용이 별도의 막으로 구성돼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보니 강남이 단순히 양쯔 강 남쪽 지방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족과 오랑캐 왕조가 번갈아가며 다스렸다. 황허 유역의 ‘중원’이 특히 그랬다.

그러나 강남은 수려한 경치와 맞물려 사대부가 한족 문화를 고수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표상됐다. 청나라를 비롯한 비(非)한족 왕조는 강남의 한족 사대부를 회유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중원의 사람들은 강희제 이전엔 모두가 명나라의 유민이었으나, 강희제 이후로는 청 왕조의 신민이 되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쓴 이 표현처럼 이 책은 유학의 ‘도통(道統)’을 지켰던 강남 사대부들이 어떻게 청나라 황제가 이루려는 ‘대일통(大一統)’의 협조자로 변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중화 중심적인 통설은 문화적으로 열등한 만주족이 한족의 문화에 흡수돼 ‘한화(漢化)’됐다는 것이지만 중국 런민대 교수인 저자의 분석은 다르다.

청 왕조가 일관되게 근검하고 질박한 북방의 생활태도를 강조하고 붕당의 폐해를 들어 명나라 문화를 비판할 때, 명나라의 유민들도 강학의 폐해나 예의의 재건을 주장하며 자기반성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유사점이 적대적인 그들을 잠재적 동맹관계로 변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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