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진보가 가야할 방향 제시한 故김기원 교수의 유고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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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김기원추모사업회 엮음/376쪽·1만8000원·창비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케이크를 먹어치우면서 그대로 간직할 수는 없다).”

진보적 입장에서 현실적 대안을 추구하다 지난해 12월 세상을 뜬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고교 영어 수업 시간에 배웠다며 지난해 3월 자신의 블로그에 인용한 속담이다.

‘복지는 좋지만 세금을 더 내고 싶지는 않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일 테다. 그러나 김 교수는 평소 그런 일은 이뤄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책은 난무하는 헛된 구호들의 텅 빈 알맹이를 따지고 들며 ‘개혁적 진보’를 설파했던 그의 1주기를 맞아 나온 유고집이다. 2011∼2014년 그가 동명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뽑아 주제별로 엮었다.

책은 진보적인 입장에 있으면서도 진보의 경직성을 탈피하려 했던 그의 고민을 경제민주화, 노동, 한국 정치, 통일 등 4개의 범주로 묶어 담았다.

그는 참여연대의 재벌 개혁 운동을 통해 재벌 비판을 시작했는가 하면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노동귀족적’ 운동에 대해서도 뼈아픈 비판을 했던 인물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 첨예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책에 묶인 글은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쓰인 글이 아니라 시사적인 문제들에 관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한 글인지라 그만큼 더 직설적이다. 그는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고 복지를 강화해 거대 기업 노동자와 종소기업 노동자의 실질적 생활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돈만 있으면 안 될 게 없다는 ‘소비자의 편리’도 희생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타계 직전까지 블로그에 글을 올릴 정도로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 그의 아내는 책 말미 발문에서 “독일에서 돌아오며 ‘이제 겨우 내가 바라는 통일 경제 연구의 방향이 잡혀 가는데…’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고 썼다.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아쉬움도 쌓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김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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