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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생명이 이식된 기계의 탄생… 지배할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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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생명이 이식된 기계의 탄생… 지배할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입력 2015-12-12 03:00수정 2015-12-12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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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불능/케빈 켈리 지음·이충호, 임지원 옮김/932쪽·2만5000원·김영사
‘와이어드’ 편집장 케빈 켈리가 20여 년 전 출간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통찰 담은 과학서
생물이 기술과 결합하는 ‘新생물학 시대’ 열려
생명 가진 기계, 인간의 힘으로 통제 불가능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는 스스로 태어날 것’
책에서는 나비와 특정 식물이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진화해 나간다는 공진화 이론이 소개된다. 기계와 인간 역시 공진화 관계를 맺으며 기계는 인간을 닮고 인간은 기계를 닮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영사 제공
1993년 와이어드(Wired)란 낯선 이름의 잡지가 창간됐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와이어드는 ‘철망이 들어간’ 또는 ‘전선으로 연결된’ 정도로 이해됐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사전에 와이어드는 ‘컴퓨터 시스템에 연결된’이라고 맨 처음 나온다. 잡지가 창간된 때는 인터넷이 아직 대중에게 일반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인터넷을 사용하며 거의 같은 수의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다.

이쯤 되었으면 실제로 지구는 와이어드된 상태일까? 와이어드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으로 7년 동안 편집장을 맡았던 케빈 켈리는 2014년 지구의 와이어드 수준이 10점 만점에 2점에 불과하며 아직 미래에 일어날 일이 무수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뭐가 더 남아있는 것일까….

켈리는 ‘통제 불능’을 통해 진정한 와이어드 세상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20세기가 찬란한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의혹에 가득 찬 생물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행동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의 시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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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1세기 생물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라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면 우리는 멈칫하게 된다. 이제는 생물이 단순한 생물로 남아있지 않고 온갖 사물과 연결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건물, 살아있는 실리콘 중합체, 오프라인에서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신경 잭, 사이보그 팔다리와 신경계, 질병 치료를 위해 설계된 바이러스와 유전공학으로 설계한 농작물 등 광대한 생태계가 펼쳐질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는 없는 법. 켈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시대순으로 서술해 나가며 독자를 적응시킨다.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상품 생산 과정, 의약품 설계에 이르는 모든 인공 시스템에서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 시스템을 볼 수 있다. 모든 과정이 자기 복제와 일정한 정도의 진화, 부분 학습, 자율적 관리를 바탕으로 굴러가는 신생물학 시스템이 됐다.

우리 사회를 추진하는 복잡한 기계와 시스템이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시스템과 생물을 구분할 수 없다. 켈리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생명과 유사한 특성이 있는 것은 통틀어 비비시스템(vivisystem)으로 부른다.

생태계와 벌 떼나 개미 군집의 ‘집단 마음’처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자기제어로봇, 기업처럼 인간이 만든 것이 모두 해당한다.

우리는 비비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을까? 자연 생태계가 인간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은 뻔하다. 켈리는 우리가 창조된 기계에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 순간 기계를 통제할 힘을 잃는다고 말한다. 기계가 야생성을 얻으면 야생의 기본 성질인 의외성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것이 새로운 기계를 창조하는 신, 즉 인간들이 마주할 딜레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계의 신들은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크게 낙담하지는 마시라. 인간은 점차 기계적인 능력을 쌓아나갈 것이고, 기계 역시 생물적 지능을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 대 기계라는 대결 국면은 지금보다 덜 중요해지고 도덕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금 생태계가 진화하며 적응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지 기대하는 게 낫다. 이젠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통제 불능’이 나온 해는 1994년. 와이어드가 창간된 이듬해다. 켈리는 와이어드를 창간할 때 이미 이 책을 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20년도 더 된 글에 담긴 현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그의 통찰이 경이롭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통제 불능#와이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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