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 50년… 한류 콘텐츠의 마르지않는 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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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30일 기념식… 1965년 민족문화추진회가 모태
지금까지 227종 1931책 번역 성과… 인재양성 등 해결 과제도 많아

1970년대 민족문화추진회(민추) 사무실에서 학자들이 교열 원고를 검토하고 있다. 월탄 박종화가 초대 회장을 맡아 1965년 11월 민추가 설립된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1970년대 민족문화추진회(민추) 사무실에서 학자들이 교열 원고를 검토하고 있다. 월탄 박종화가 초대 회장을 맡아 1965년 11월 민추가 설립된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민족이 쇠퇴하면 그 나라의 학술과 예술은 위축되어 그 빛이 쇠미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찬연한 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던 근대의 암흑기는 민족문화의 말살을 당했고 (…).”

1965년 11월 6일 서울대 의과대 강당에서 열린 ‘민족문화추진회(민추)’의 창립총회에서 역사소설가 월탄 박종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사학자 이병도가 임시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했고,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경과 보고를 했다. 일제 강점과 6·25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었던 전통 정신문화의 맥박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민추 결성 이후 본격 시작된 고전 번역이 이달로 50년을 맞았다.

민추와 2007년 그를 계승해 정부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한국고전번역원은 현재까지 227종 1931책에 이르는 한문 고전을 번역했다. 4700만 자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에 1971년 착수해 22년 만에 완역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영조 28년(1752년)부터 1910년 국권을 잃기까지 국정의 제반 사항을 낱낱이 기록한 ‘일성록’도 최근 정조 시절을 완역했다. 번역된 고전들은 드라마 ‘대장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수많은 한류 콘텐츠의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민추 시절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컸다. 1986년부터 쓰고 있는 서울 종로구 비봉길 사무실로 이전하기까지 이사만 10번을 다녔다. 1970년대 잠시 사용했던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사무실은 위층이 카바레여서 낮에도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977년부터 민추에서 일한 성백효 고전번역원 명예교수는 “민추 시절 월급은 초중고 교사보다 적었지만 제자가 강의 시간에 늦으면 쉬는 시간까지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강의실에 들어갈 정도로 사제 간에 예절이 엄격했다”고 회상했다.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먼저 인력 부족으로 인한 더딘 번역 작업 속도다. ‘승정원일기’는 1994년 번역에 착수했지만 번역률이 17%에 머무르고 있다. 고전번역원에 따르면 2012년 문집 1259종을 정리해 원본 그대로 출간한 한국문집총간(500책)도 번역률이 10% 정도다. 이 역시 완역에 최소한 45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번역을 위한 인재 양성도 녹록지 않다. 지금은 일반 대학원에서 관련 공부를 한 뒤 다시 3∼7년 동안 고전번역교육원 등에서 전문 번역 교육을 받아야 번역자로서의 몫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학위와 비학위 과정을 이중으로 이수하는 셈이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은 “이 같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석박사 학위 과정인 ‘고전번역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4700만 자의 ‘조선왕조실록’은 번역에 22년이 걸렸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4700만 자의 ‘조선왕조실록’은 번역에 22년이 걸렸다.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고전번역원은 ‘한국고전번역 50년 기념식’을 30일 오전 10시 반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다. 정태현 고전번역원 명예교수, 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 회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한다. 다음 달 4일에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정조대 일성록 완역 기념 학술대회가 열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왕조#번역#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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