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옛사랑 vs 현재 사랑… 경제학에선 누구 손 들어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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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소유한 이득은 그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기본 가치가 된다. ―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김영사·2012년) 》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은 4년 전 회사가 업무용으로 ‘빌려준’ 물건이다. 거친 취재현장을 많이 다닌 탓인지 속도가 느리고 가끔 먹통이 된다. 몇 달 전 노트북이 고장 나서 수리를 맡겼더니, 담당자가 다른 중고 노트북으로 교체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지금 사용하는 것보다 2년 늦게 나온 제품인 데다 외관도 훨씬 깨끗했다. 여러모로 ‘내 것’보다 나아 보였다. 일주일간 사용해 보고 결정해도 된다는 말에 그 노트북을 덥석 집어왔다.

가져온 노트북은 속도가 빠르고 무선인터넷 연결도 매끄러웠다. 이전 것보다 소음이 조금 심한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그 노트북을 반납하고 옛 물건을 다시 찾아왔다. 성능이 떨어지고 낡았어도 이미 소유했던 물건을 내놓는 일은 어렵다. 그것이 순수하게 ‘내 것’이 아니라 빌린 물건이라도 말이다. 이렇게 손에 쥔 걸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을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은 ‘소유 효과’라고 설명한다.

경제학 이론에서 합리적 인간은 똑같은 효용을 주는 재화에 대해 ‘무차별’하게 반응한다. 이에 대해 행동경제학자인 저자는 기준점을 무시하는 생각이라고 반박한다. 인간은 기준점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가진 것을 잃는 고통이 새로운 것을 얻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변화로 인한 장점보다 단점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런 손실회피 경향은 인간을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끈다. 저자는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의 사고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류를 파헤치고,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이 현실에선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첫사랑을 그리워하거나 옛날을 추억하는 마음도 ‘가졌던’ 사람이나 시간에 대한 ‘소유 효과’일지 모른다. 추억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눈앞의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놓쳐선 안 된다. 옛 사람을 그리워하느라 지금 내 곁의 누군가를 외롭게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간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할 추억이 된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책#경제학#생각에 관한 생각#대니얼 카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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