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병무청, 수술 않은 트랜스젠더 ‘입영대상자 판정’ 위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7일 2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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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하지 않고 호르몬치료(에스트로겐)만 받은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조한창)는 A 씨가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A 씨는 어린 시절 동성 남학생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다”며 “한 차례 입영했다가 귀가 조치된 후 가족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한 점 등에 비춰보면 A 씨는 허위로 주변인들에게 성정체성을 가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A 씨는 2010년부터 4년 동안 국립중앙의료원 등에서 정신과 상담치료 및 심리검사를 받았고 성주체성 장애로 진단받았다”며 “A 씨가 성주체성 장애에 대해 4년간 계속해 치료를 받은 점에 비춰보면 단지 병역 면제를 위해 상당한 기간 동안 의사를 속이며 치료를 받아왔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맥락에서 “A 씨는 성주체성 장애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성 및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현역병으로 복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성주체성 장애를 앓고 있는 A 씨에 대해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성주체성 장애는 본인의 성(性)을 거부하고 반대의 성별로 생활하기를 원하는 정신상태를 뜻한다.

앞서 A 씨는 2011년 4월 징병신체검사 결과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은 뒤 같은해 11월 성주체성 장애를 이유로 병역처분 변경원을 제출했다. 이후 A 씨에 대해 재신체검사가 이뤄졌고, A 씨는 2012년 9월 다시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A 씨에게 현역병 입영대상자 처분을 내렸다.

이후 A 씨는 2012년 10월 보충대에 입영했지만 입영신체검사에서 신체등급 7급 판정을 받고 다시 귀가 조치됐다. 그는 재신체검사와 중앙신체검사소의 정밀검사를 거쳐 또 다시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았고 병무청은 지난해 6월 재차 현역병 입영대상자 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성주체성 장애로 인해 군복무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되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등 인권단체들은 “병무청이 최근 트랜스젠더에 대한 병역면제 사유로 징병검사 규칙에도 없는 고환적출 등 생식기수술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며 “병무청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자의적인 병역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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