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정치 믿음 버린적 없다”… 고인 육성, 마지막 큰 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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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9선 의원’ YS, 국회 영결식

때마침 첫눈이 내렸다. 평생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듯 하얀 눈꽃이 내렸다. 26일 영결식이 진행된 국회의사당에 걸린 YS의 초상은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영결식장에서는 ‘서설(瑞雪·상서로운 눈)’이라는 말이 나왔다. 의회주의자 YS는 이날 국회에 마지막 등원을 한 뒤 영면했다. YS를 예우하는 조총(弔銃) 21발이 발사됐다.

○ 끝내 눈물 쏟은 유족들

갑자기 영하 2도까지 떨어져 쌀쌀해진 이날 영결식은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국민의례와 고인의 약력 소개, 조사, 추도사, 고인의 생전 영상 방영, 종교 의식, 추모 공연, 조총 발사로 마무리됐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발인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영결식에는 모습을 보였다. 장남 은철 씨와 차남 현철 씨, 세 명의 딸 등 유족들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양승태 대법원장 등 4부 요인, 주한 외교 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 명이 참석했다. 전날 조문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거동이 불편한 노태우 전 대통령,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나오지 않았다. 이 여사는 23일 서울대병원 빈소에서 조문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은철 씨는 중절모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묵묵히 부친의 넋을 기렸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며 은둔 생활을 해온 그이지만 아버지 영결식에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진정한 문민정치가, 안식하소서”

국가장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 낭독에 이어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읽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섬겨 오신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습니다. 안식하소서”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목이 멘 듯 말을 잇지 못했다.

YS의 생전 모습을 담은 6분 15초짜리 영상물이 상영되자 참석자들은 옛날을 회상하는 표정이었다. 유족들이 제작한 이 영상물을 보면서 현철 씨가 흐느끼는 등 곳곳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영상물에서 한 초등학생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YS에게 “‘확실히’를 ‘학실히’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거 한 번만 해 주세요”라고 부탁하자 YS가 “학생 정확하게 들어요, ‘확실히’”라고 말하며 웃는 장면이 나오자 엄숙했던 영결식장에 가벼운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 “의회 정치에 대한 믿음 버린 적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 여사와 나란히 헌화한 뒤 휠체어에 앉아 영결식을 지켜보는 손 여사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YS의 정치적 기반인 상도동계 전·현직 의원들을 비롯해 DJ를 따랐던 동교동계 인사들도 이날 영결식장을 찾았다. 동교동계인 권노갑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영결식이 끝난 뒤 “아직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항상 살아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영결식장에는 과거 YS가 국회에서 연설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가장 어둡고 괴로운 순간에도 의회 정치에 대한 믿음과 국회에 대한 애정을 버린 적이 없다”(1996년 15대 국회 개원 당시). 진정한 의회주의자였던 YS가 신뢰의 위기에 빠진 19대 국회를 향해 던지는 준열한 메시지다.

이날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식이 끝난 뒤 김 대표와 새정치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 이원종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 200여 명이 갈비탕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이들은 소주를 함께 마시며 “YS가 남기고 간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꼭 실천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30일 민주화추진협의회 합동 송년회를 열어 다시 한 번 화합의 자리를 갖는다. 김 대표는 “송년회를 겸해서 동교동 쪽에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자리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홍정수 기자
#김영삼#前대통령#전대통령#ys#서거#국가장#의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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