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어도 외롭지 않게… 짝 찾아 함께 갈수 있었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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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인의 엄마입니다]<下>‘장애인 자녀 결혼’ 또 다른 고민

2013년 4월 결혼식을 올린 지적장애인 서혜경(왼쪽), 유지용 씨 부부. 이들은 “비장애인이 생각하기에는 다소 부족해보일지라도 서로 의지하며 잘살고 있다”며 결혼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서혜경 유지용 씨 제공
2013년 4월 결혼식을 올린 지적장애인 서혜경(왼쪽), 유지용 씨 부부. 이들은 “비장애인이 생각하기에는 다소 부족해보일지라도 서로 의지하며 잘살고 있다”며 결혼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서혜경 유지용 씨 제공
“엄마 지금 뭐해?”

박나옥 씨(54·여) 휴대전화에서 어눌하지만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딸 같은 이연주 씨(19·여)다. 이 씨는 시간이 날 때면 박 씨에게 전화를 건다. 안부를 묻고 학교 얘기도 들려준다.

둘은 어머니와 친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살갑게 지낸다. 박 씨가 이 씨를 알게 된 것은 올해 초. 장남인 심서현 씨(28)가 다닌 대학의 교수로부터 이 씨를 소개받았다. 지적장애 3급인 이 씨는 현재 호산나대에 재학 중이다. 박 씨는 이 씨의 밝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심 씨 역시 이 씨가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둘은 4월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이전까지 박 씨 부부는 장남의 결혼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마땅한 신붓감을 찾기 어려웠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잖아요. 귀여운 손자도 보고 싶고요. 비록 서현이가 장애가 있지만 우리가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하진 않으니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고요.”

심 씨는 지적장애 2급이다. 지적장애인 대상 대안학교인 호산나대를 나와 노인요양병원 등에서 일하다 지금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경리 일을 맡고 있다. 택배를 보내고 PC 문서 작업을 하는 등 간단한 업무 수행엔 문제가 없고 일상생활에도 큰 무리가 없지만 장애인을 꺼리는 일부의 편견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다.

박 씨 부부는 같은 장애를 가진 신붓감을 찾아 나섰다. 같은 아픔이 있다 보니 서로를 더 이해하고 아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던 이 씨도 이제는 심 씨만큼이나 심 씨 가족과 한 가족처럼 지낸다. 박 씨는 “연주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연주가 대학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현이와 결혼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 엄마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장애인 자녀의 결혼 문제는 장애인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고민거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진행한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장애인 중 만 65세 이상은 2011년 38.8%에서 2014년 43.3%로 증가했다. 국민 평균수명이 매년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역시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장애인 자녀가 의지할 가족 없이 홀로 남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랑 또는 신붓감 찾기에 나선다. 호산나대는 올 7월부터 매주 토요일 결혼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이 대학 재학생 대다수는 지적장애인이다. 학과 수업은 학생들이 대학을 나온 뒤 직장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제는 결혼 문제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혼아카데미는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부모에게 사위나 며느릿감을 소개해주고 장애인 자녀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사항을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동귀 부학장은 “10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에서 며느리를 데려오려는 부모가 많았지만 의사소통 등의 문제를 고려해 국내로 눈을 돌리는 추세”라며 “비장애인보다 결혼 적령기인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은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아카데미에는 주로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찾아오는 편이다. 지적장애 2급인 이모 씨(26)의 아버지는 “아들이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뭐든 해줄 생각”이라며 “지금 운영하는 정보기술(IT)업체를 추후 손자에게 물려주고 손자가 아들의 장래까지 책임지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장애인 결혼도 환대받는 사회로

반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모에게 장애인 자녀의 결혼은 큰 부담이다. 장애인 결혼을 주선하는 성민복지관의 김용지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새로 들어오는 가족에다가 손자, 손녀까지 부양하는 것은 엄청난 짐”이라며 “홀로 지내는 자녀를 보면 눈물겹지만 되도록 결혼은 하지 않길 바라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결혼을 해도 장애인 부부는 비장애인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을 때 받는 갈등과 스트레스다. 어릴 때부터 부모나 보호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지적장애인의 경우 새로운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충현복지관 데이트코칭센터의 조선영 실장은 “가상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결혼 이후 필요한 책임감은 결여된 채 환상만 품고 있는 지적장애인도 적지 않다”며 “욕구는 넘치는데 실질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결혼을 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장애인들의 ‘삐딱한’ 시선도 부담이다. 김용지 사회복지사는 “자녀가 ‘몸도 성치 않은데 자식 낳아서 책임질 수 있어?’ 같은 말을 듣는 게 싫어서 일찌감치 자녀에게 ‘너는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짐을 덜고 장애인 부부가 사회에 안착하려면 세심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성민복지관 경제활동지원팀장은 “장애인의 결혼은 부양해야 할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게 아니라 또 한 명의 지지자가 생기는 것”이라며 “경제적 지원 외에도 이성교제, 결혼생활, 성교육 등 장애인을 위한 사회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장애인 부부들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행복한 베이커리&카페’ 직원들이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SPC그룹, 서울시, 푸르메재단이 협력해 2012년 9월 1호점 이후 5개 지점을 냈다.

푸르메재단 제공
‘행복한 베이커리&카페’ 직원들이 환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SPC그룹, 서울시, 푸르메재단이 협력해 2012년 9월 1호점 이후 5개 지점을 냈다. 푸르메재단 제공
▼ 표현 서툴러도 맡은 일은 거뜬히… 장애인들의 ‘당당한 홀로서기’ ▼

SPC-베어베터, 장애인고용 새 모델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베어베터’는 최근 하반기 장애사원 채용공고를 냈다. 2012년 설립된 이 업체는 올해 흑자를 달성했다. 발달장애인 100여 명이 복사기에 종이를 채우고 책을 제본하며 쿠키도 만든다. 제품 배달도 이들이 맡는다.

전문가들은 “베어베터는 업무 과정을 나눠 단순화하고,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직무를 찾는 방식으로 중증 장애인 고용의 새 모델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집이 세지만 약속을 잘 지키고, 남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툴지만 익숙한 일을 잘 수행하고, 규칙에 집착하지만 그래서 반복된 업무를 누구보다 잘해낸다는 설명이다.

법에 따라 장애인 고용 비율 2.7%를 맞추지 못하면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사업장에서 만든 물건을 사면 간접적으로 고용에 기여한 것으로 간주해 절반까지 부담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있는 ‘행복한 베이커리&카페’ 1호점에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2000원에 판다. 평균 4000원가량인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 맛과 견줄 만했다. 계산대 옆에는 쿠키와 빵도 놓아둔다. 겉보기에는 여느 평범한 커피숍과 같다. 장애인 두 명, 비장애인 두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2012년 9월 1호점을 시작으로 은평병원, 서울시도서관 등에 총 5개 지점을 낼 수 있었던 것은 SPC그룹 덕분이었다.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 등 제과와 커피 분야 프랜차이즈 경험이 풍부한 SPC가 발달장애인 직원의 교육을 맡았다. 위생 교육과 신상품 개발, 신규 매장의 시장성 조사를 하는 것 역시 SPC가 돕는다. 푸르메재단은 직원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을 면접하고 2, 3주에 걸쳐 실습평가도 거친다.

현재 장애인 11명, 비장애인 11명 등 총 2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루 5시간 근무자는 월 65만 원, 8시간 근무자는 월 130만 원을 받는데 반응은 뜨겁다. 부모들은 “자녀가 일할 수 있고, 사회와 연결되어 성취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동정심’으로 장애인이 만드는 물건을 사주는 경우가 많았다. 고재춘 푸르메재단 대외협력실장은 “직원들이 지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을 만큼 성실하다”며 “다른 프랜차이즈와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서비스와 품질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김철웅 채널A 기자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장애인#엄마#결혼#장애인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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