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찌든 삶의 대반전…무한동력 ‘꿈’이 있었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5시 45분


거대한 바퀴로 상징되는 무한동력 기관의 무대가 인상적인 뮤지컬 ‘무한동력’의 한 장면. 무한동력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꿈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하숙생들의 애환과 도전이 은근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사진제공|PAGE1
거대한 바퀴로 상징되는 무한동력 기관의 무대가 인상적인 뮤지컬 ‘무한동력’의 한 장면. 무한동력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꿈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하숙생들의 애환과 도전이 은근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사진제공|PAGE1
■ 뮤지컬 ‘무한동력’

취업준비생 장선재·추리닝맨 진기한 등
퍽퍽한 삶에 찌든 하숙생들…
거대한 바퀴 ‘무한동력’보며 꿈 되찾기
이야기 흐름 끊는 과도한 음악 ‘옥에 티’


전기코드를 꼽지 않아도, 기름을 넣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영원히 돌아가는 기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괴짜 발명가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무한동력’이 이 뮤지컬의 제목이다. 원작은 ‘신과 함께’(역시 뮤지컬로 만들어졌다)의 작가 주호민의 동명의 웹툰이다. 서울 대학로 TOM 1관에서 공연 중이다.

무한동력이 말하고 싶은 것은 식상하다면 식상할 법한 ‘꿈’이다. 무한동력 기관 만들기에 미친 사나이 한원식은 극 중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라는 근사한 어록을 남긴다. 밥은 현실이요, 꿈은 이상이다.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해볼수록 목에 걸린 밥알처럼 껄끄러운 물음이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물으나마나 밥이겠지만.

거대한 시계 톱니바퀴를 떠올리게 하는 무한동력 기관을 활용한 무대가 ‘예술’이다. 한원식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또 다른 무대다. 이 하숙집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살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취업준비생 장선재, 공무원 시험에 매번 낙방하는 ‘추리닝맨’ 진기한, 한원식의 딸로 똑똑하고 당찬 고3 여고생 한수자, 현대무용을 전공했지만 집안사정으로 그만 두고 이벤트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김솔, 반항아 한수동의 사는 얘기와 꿈 얘기가 극을 메워간다.

찌들고 구질구질한 얘기들이지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작가 주호민의 힘이다. ‘남의 일’을 끄집어다가 ‘어쩌면 나의 일’로 만드는 능력이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싶은 인물이 없다. 하나하나 모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누군가가 무대에서 짜장면을 먹으면 따라 먹고 싶어지고, 소주를 마시면 마시고 싶어진다. 찌질이 진기한이 입은 촌티 풀풀나는 ‘파란 추리닝’이 탐날 정도다.

뮤지컬 ‘무한동력’. 사진제공|PAGE1
뮤지컬 ‘무한동력’. 사진제공|PAGE1

● “좀 과했나?” 이야기 흐름을 끊는 음악은 ‘티’

아쉬움도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음악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보여줄 것보다 들려줄 것이 더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감이 있다. 음표가 과용된 악보 같았다고나 할지. 음악이 왕왕 스토리를 끊어 이음매가 느슨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원식을 맡은 김태한의 연기가 밋밋한 것도 아쉬웠다. 개성이 뛰어나고 몸도 잘 쓰는 배우인 김태한에게 24시간 쓸쓸한 웃음을 짓고 있는 순둥이 한원식은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일지도 모르겠다. ‘추리닝맨’ 진기한의 허규, 한수자 역의 박란주, 김솔을 맡은 김다혜는 파이팅과 호흡이 무척 좋았다.

한원식은 “대기업 입사만이 나의 꿈”이라는 장선재에게 “어떤 직업을 갖는 게 꿈이 될 순 없어. 그건 꿈의 계획이니까”라고 말해주고는 예의 쓸쓸한 웃음을 날리며 무한동력을 고치기 위해 자리를 뜬다.

그러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잃어버릴 꿈 따위는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가져보지 않은 꿈을 가져보았다고 허세를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노래한다. 꿈은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번 돌리면 영원히 스스로 돌아가는 무한동력 같은 환상일지라도 꼭 가져보라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꽈악 움켜쥐고 살아가라고.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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