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눈 닿는 곳에 감성 한 조각… 의류·음료 매장에 들어온 예술작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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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예술과 손잡은 매장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하우스 오브 디올’ 매장을 내면서 4층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달 초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해 이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레이디 디올 백’ 전시회를 관람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제공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하우스 오브 디올’ 매장을 내면서 4층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달 초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해 이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레이디 디올 백’ 전시회를 관람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 제공

미국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8년 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야구 모자를 눌러 쓰고 45분간 길거리 연주회를 열었다. 그는 350만 달러(약 40억5825만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클래식 6곡을 연주했다.

지나간 사람은 1097명. 이 중 1분이라도 연주를 들은 사람은 7명, 동전함에 돈을 넣은 이는 27명이었다. 그러니까 1070명은 연주자의 1m 앞을 그냥 지나쳤고, 모은 돈은 32달러(약 3만7100원)를 조금 넘었다. “모습을 숨긴 채 연주해도 길거리에서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그의 실험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어렵고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길에서 만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알아보지 못한 것도 ‘바이올린 연주는 음악회에서 듣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 때문은 아닐까.

영국 출신의 설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은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나의 예술이 곧 나의 삶”이라는 말을 남겼다. 유명 갤러리를 가야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본 한 폭의 그림도 내 마음속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 무대는 어느덧 옷가게나 커피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내외 업체들은 매장 내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거나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일상이 곧 예술’임을 외치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한 폭의 예술 작품에 손님들은 반가워하고 있다.

신진 작가들의 그림을 매장 내에 설치한 커피전문점 탐앤탐스의 내부 모습. 탐앤탐스 제공
신진 작가들의 그림을 매장 내에 설치한 커피전문점 탐앤탐스의 내부 모습. 탐앤탐스 제공


옷 사러 왔다가 전시회에 홀리다… 패션 매장 속 문화 공간

패션 매장 내 갤러리를 만든 대표 브랜드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다. 2006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에르메스 매장 3층에 갤러리 ‘아뜰리에 에르메스’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던 에르메스는 지난해 10월 갤러리와 카페·레스토랑을 연결해 재개관했다. 에르메스 관계자는 “고객들이 좀 더 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카페·레스토랑을 붙여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고 위치 역시 접근하기 쉽도록 지하 1층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갤러리 옆에 마련된 카페와 레스토랑에는 에르메스의 디자인을 넣은 식탁보가 마련돼 있어 패션과 음식, 예술을 공감각적으로 접할 수 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도 지난해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하우스 오브 디올’ 매장을 내면서 4층에 갤러리를 만들었다. 에르메스와 달리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공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 루카스 잘만의 드로잉과 각종 조각 작품이 전시 돼있다. 현재는 ‘레이디 디올 백’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달 초 방한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이 전시회를 관람하기도 했다. 제조유통일괄형(SPA) 패션 브랜드 ‘H&M’, ‘COS’ 등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H&M그룹은 2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COS 청담점에 복합 문화 공간을 연다. H&M그룹이 COS 매장 내 문화 공간을 만든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이 공간은 1∼3층 매장 위인 4층에 마련된다. COS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점을 시작으로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현대백화점 판교점, 청담점 등 1년 내 4개 매장을 열 정도로 브랜드의 반응이 좋아 본사에서 한국 시장에 의류 판매 외에 새로운 것을 해보자며 복합 문화 공간을 연 것”이라고 말했다. H&M그룹 측은 국내 젊은 신진 예술가들과 함께 공간을 꾸릴 계획이다.

내년 1월 26일까지 열리는 그림과 조각, 철 구조물 전시회인 ‘섀도 오브젝트’가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 플래그십 매장을 낸 스포츠 브랜드 EXR도 건물 3층에 복합 문화 공간 ‘더 엑스 랩’을 만들었다. 현재 이곳에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이탈리아인 사진작가 알렉산드로 시모네티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스포츠 브랜드 EXR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플래그십 매장 3층에 낸 복합 문화 공간 ‘더 엑스 랩’. EXR 제공
스포츠 브랜드 EXR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플래그십 매장 3층에 낸 복합 문화 공간 ‘더 엑스 랩’. EXR 제공

아메리카노 한 모금, 그림 한 점

갤러리나 무대 등 별도의 예술 공간이 없는 곳에서도 예술은 계속된다. 최근 서울 시내 주요 커피전문점, 패밀리레스토랑 등은 매장 내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먹고 마시는 매장이 곧 예술 공간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중이다. 이런 시도는 대표적으로 커피전문점 탐앤탐스에서 찾을 수 있다. 탐앤탐스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2013년부터 매장 내 그림을 전시해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 ‘갤러리 탐(耽)’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주연 작가의 ‘무빙 드로잉-북 스티치’ 전(압구정점) 김경화 작가의 ‘꿈을 그리다’ 전(도산로점), 박대수 작가의 ‘더 나은 세상으로’ 전(청담점) 등 서울 시내 주요 7개 매장에서 미술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또 25일 아셈타워점 매장에서는 ‘족구왕’ 등의 독립영화 상영회도 열었다. 이제훈 탐앤탐스 마케팅 기획팀장은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신진 작가는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고 커피숍 방문 고객은 갤러리를 따로 방문하지 않고도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는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 씨, 동물 그림화가 신수성 씨의 작품을 아웃백 센트럴시티점과 김포점에 각각 전시하고 있다.

음악 감상실로 변한 카페도 있다. 커피전문점 투썸플레이스는 7월부터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과 1층 입국장 매장 등 2곳에 CJ E&M의 음악 채널인 엠넷과 협업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고객은 차를 마시며 4대의 태블릿PC로 엠넷이 선곡한 추천 음악을 헤드폰을 통해 들을 수 있다. 투썸플레이스를 운영하는 CJ푸드빌 관계자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만들고자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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