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창비 50년, 백낙청의 문학과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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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집안 재산에서나 지식에서나 가장 귀족적인 좌파를 꼽는다면 백낙청 씨일 것이다. 백 씨의 부친 백붕제는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를 지낸 사람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백붕제의 형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 시장 공관으로 삼으려다 논란 끝에 철회한 북촌 한옥이 백인제가 소유했던 가옥이다.

▷백낙청 씨의 명석함은 학생 때부터 유명했다. 경기고 3학년 때 미국 뉴욕 세계고등학생토론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사실이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 1959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그가 미국 브라운대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전체 졸업생을 대표한 연설을 해 한국 학생의 우수함을 과시했다는 소식이 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 그는 하버드대 박사학위 과정 중 귀국해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백 씨는 1966년 ‘창작과 비평(창비)’을 창간했다. 창비는 ‘문학과 지성’과 더불어 문예지의 두 축을 이뤘다. 그는 분단을 주제로 삼은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그 배경 이론으로 한국 사회의 온갖 왜곡을 초래하는 원인은 분단이라는 ‘분단모순론’을 들고 나왔다. 남북이 팽팽한 체제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분단모순론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분단모순론은 길을 잃었다. 그는 새로 ‘이중극복론’을 들고 나왔다. 분단을 극복해 통일로 가야 하지만 통일은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이중의 극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 씨와 창비는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자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진보적 흐름이 끊겼다고 보고 적극적인 현실 개입을 시작했다. 광우병에 대해 거짓을 늘어놓고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우겼다. 백 씨의 2013년 체제는 ‘이중극복론’식 통일로 가기 위한 체제다. 그는 원탁회의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의회 진출을 도왔다. 백 씨가 오늘 창비 편집인에서 은퇴한다. 50년 창비를 떠나는 것이다. 그의 문학평론은 훌륭했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주장은 서구의 무책임한 극좌파나 다름없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창비#백낙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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