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YS, 공과가 교차했던 88년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2일 01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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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자식을 못 이긴 아버지’ ‘국가적 경제위기의 아버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YS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많은 일들을 이뤄내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린 첫 문민대통령이라는 찬사와 자식단속에 실패하고 외환위기를 부른 무능한 지도자라는 비판이 공존한다.

▽하나회 숙청과 역사 바로세우기=YS의 업적을 거론할 때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것 중의 하나가 이전 군부정권의 핏줄이었던 육사 출신 엘리트 장교 모임 ‘하나회’를 해체한 것이다. 이는 40년 가까이 이어져온 군부정권의 정치 참여를 종식시키고 군사독재 부활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진정한 문민화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현대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또 YS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하면서 ‘5·18 특별법’(1995)을 제정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12·12’ 및 5·18에 대한 책임과 함께 뇌물수수 협의 등으로 구속했다.
YS는 이와 함께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1995년 그전까지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해 내려보내던 시도지사를 주민이 직접 뽑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를 도입함으로써 지방분권의 첫 기틀을 마련했다.

YS는 남북관계에서도 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뻔 했다. 북핵 위기를 넘긴 남북은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중재로 19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으나 불과 2주 전인 7월9일 김 주석이 사망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갔다.

YS는 또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하고 지방 곳곳의 대통령 안가(安家)를 철수하는 권위주의 타파에도 나섰다.

그러나 아들 현철 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소통령’ 권력을 행사해온 끝에 한보비리특혜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집안 다스리기에 실패함으로써 큰 오점을 남겼다.

▽금융실명제와 IMF 국가부도=하나회 해체와 함께 YS의 가장 큰 공으로 거론되는 게 바로 ‘금융실명제’ 도입이다.

1993년 8월 12일을 기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공표함으로써 외형적 성장에만 전력 투구해온 한국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어 부정부패를 막소 공정하게 과세를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기득권 층의 엄청난 반발을 무릅쓰면서 전격 실시한 것이다. 또 공직자 재산등록제를 실시한 것도 YS였다.

YS 정부는 또 한국이 서방선진국들의 친목모임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수출 10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는 등 중진국의 기틀을 확실히 다지는 시기였다.

그러나 정권 마지막 해인 1997년의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금융기관의 부실, 방만한 경영을 해온 대기업의 연쇄부도, 단기외채의 급증 등으로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 위기에 이르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사실상 경제주권을 내준 것.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YS 정부가 임기내 1인당 1만 달러 소득과 OECD 가입이라는 치적에만 관심을 쏟다보니 정경유착이라는 후진적 경제시스템과 관치금융이라는 후진적 금융환경을 선진화하지 못한 채 자본시장을 개방해 초래한 위기”라고 말한다. 물론 1997년 여름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된 금융기관 개혁법안만 통과됐어도 ‘IMF 부도’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고공화국=YS 정권 내내 대형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안았다. 1993년 10월10일 여객선 서해 페리호가 전북 부안군 앞바다에서 침몰해 29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1994년 10월21일에는 서울 성수대교 붕괴되는 초유의 사고가 일어났다. 또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건으로 101명이 사망하는 등 24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같은 해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무려 501명이 사망하고, 6명 실종, 937명이 부상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있었다. 1997년 8월6일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해 승객 승무원 229명 사망했다.

하태원기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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