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차곡차곡 쌓인 독서 지방층이 영혼을 살찌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읽다/김영하 지음/220쪽·1만2000원·문학동네

‘읽다’는 ‘보다’ ‘말하다’에 이은 소설가 김영하 씨의 3부작 산문의 완결편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책에 관한 이야기다. 왜 책을 읽는지, 책을 읽을 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에 대해 작가의 독서 경험과 버무려 적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책들은 주로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 책, 즉 고전이다. 고전 ‘오디세이아’의 플롯을 짚으면서 ‘오래된 것의 새로움’을 설파한다. 이 서사시의 서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오디세우스를 어떻게 하면 무사히 귀향시킬 수 있을지 여신 아테나가 다른 신들과 논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의 화자는 저자인 호메로스로 짐작된다. 그런데 실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가 한참 지나서다. 시점도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호메로스가 이렇게 플롯을 복잡하게 쓴 데 대해 김 씨는 “당대의 독자들이 대부분 알고 있었을, 전해 내려오는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다르게’ 쓰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고전의 매력과 의미를 꼼꼼하게 전달한다.

마약 같은 독서의 힘에 대해서도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예로 든다. 대학 입시가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도 작가는 소설에 푹 빠졌었다. 최인호의 ‘지구인’부터 김용의 ‘영웅문’까지 온갖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계속돼 온 독서 행위를 통해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정신적 세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작가는 알게 된다.

그는 그렇게 독서 행위가 쌓이고 삶의 경험이 쌓인 인간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차분한 경어체로 쓰인 산문은 김 씨의 재기 넘치는 소설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깊이 연모하는, 오래 알아왔지만 가까이 하기 어려운 대상에 대한 고백처럼 읽힌다. 그 대상은 물론 그가 읽었고 그를 작가로 만든 문학작품들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읽다#김영하#보다#말하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