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대중의 번영이 부르주아 문명을 파괴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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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열의 시대/에릭 홉스봄 지음·이경일 옮김/368쪽·2만 원·까치
현대사상가 홉스봄, 부르주아 문명의 한계 지적부터
20세기 후반 산업과 팝아트의 관계까지 문화와 예술사 다뤄

메릴린 먼로를 주제로 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 홉스봄은 ‘파멸의 시대’를 통해 20세기 서구의 문화사를 정리했는데, 대중문화와 깊이 관련 있는 팝아트도 그의 연구 주제 중 하나였다. 동아일보DB
메릴린 먼로를 주제로 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 홉스봄은 ‘파멸의 시대’를 통해 20세기 서구의 문화사를 정리했는데, 대중문화와 깊이 관련 있는 팝아트도 그의 연구 주제 중 하나였다. 동아일보DB
‘파열의 시대’의 출간으로 ‘극단의 시대’와 ‘미완의 시대’와 더불어 20세기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홉스봄의 현대사 3부작이 완성됐다. 20세기 세계 현대사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단연코 ‘극단의 시대’를 들 수 있다. ‘미완의 시대’는 그가 ‘극단의 시대’를 자서전 형식으로 풀어 쓴 20세기 현대사다.

홉스봄 같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가 사회경제사나 운동사가 아닌 문화와 예술의 세계사를 쓰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이전에는 ‘아방가르드의 쇠퇴와 몰락’과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 등을 썼고, 이번에 20세기 문화를 다루는 유고작 ‘파열의 시대’가 나왔다.

그의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와 탁월한 지적 세계, 그리고 그의 활동지역인 런던의 문화적 위치 등이 이런 문화사 서술을 가능하게 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부모가 반(反)이성, 반(反)도덕을 표방한 예술 사조를 뜻하는 다다이즘의 신봉자들에게 둘러싸여 결혼했다는 책 내용을 보면 집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에릭 홉스봄
에릭 홉스봄
그는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케임브리지 사도회’의 핵심 멤버였기 때문에 다양한 지적 영역을 편력할 수 있었다. 또 지적 토대가 형성되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비롯해 생애 대부분을 보낸 런던이 파리, 뉴욕과 더불어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20세기 문화의 세계적 흐름을 조망하기에 유리했다.

‘파열의 시대’는 그가 1964∼2012년 약 50년 동안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오늘날 고급문화가 처한 곤경’은 상층 소수 중심의 유럽 부르주아 문명이 20세기에 처한 한계를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제2부 ‘부르주아 세계의 문화’는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란 책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유럽 부르주아 문화를 유대인, 젠더, 아르누보 등 소수 집단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 제3부 ‘불확실성, 과학, 종교’는 부르주아 문명이 처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관련해 조지프 니덤 같은 과학사가를 비롯해 과학, 종교, 예술 등을 다룬다. 제4부 ‘예술에서 신화로’는 20세기 후반 산업시대와 팝아트 사이의 관계와 미국 카우보이 대중문화를 살핀다.

홉스봄은 유럽 부르주아 문명을 유럽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지배체계를 확립해 나가던 19세기에 형성된 신념과 가치체계로 본다. 그는 부르주아 문명의 기능, 제도, 정치체계와 가치가 상층 소수를 위해서 고안됐기 때문에 평등이나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부르주아 문명은 자본주의 발전이 시작되면서 형성됐지만, 역설적으로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대중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장하면서 문명의 토대는 파괴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책은 유럽 부르주아 문명의 쇠퇴 원인을 대중사회의 등장과 연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새로 등장한 ‘하위문화’를 대안으로 삼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강성호 순천대 사학과 교수
강성호 순천대 사학과 교수
또 부르주아 문명의 출현 과정과 쇠퇴 과정을 유럽 차원에서만 본다는 점도 문제다. 20세기에 유럽 이외의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이 성장하면서 유럽 문명의 축소화, 주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같이 지적돼야 했다.

강성호 순천대 사학과 교수
#파열의 시대#팝아트#에릭 홉스봄#부르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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