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 바탕 ‘기업 맞춤형’ 기술 개발… BMW-도요타가 찾는 곳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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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혁신 현장을 가다]<上> 독일 국가연구소 경쟁력 비결

독일 국가 연구소의 경쟁력은 수준 높은 기초 연구다. 안드레아스 레손 프라운호퍼 물질 및 빔기술연구소(IWS) 부소장(왼쪽)이 BMW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자동차 엔진용 피스톤링을 들고 있다. 만프레트 헤네케 라이프니츠 고체상태 및 물질연구소(IFW) 소장은 “장기간 원천 연구를 자유롭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래형 산업에 필요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라이프니츠 IFW 제공
독일 국가 연구소의 경쟁력은 수준 높은 기초 연구다. 안드레아스 레손 프라운호퍼 물질 및 빔기술연구소(IWS) 부소장(왼쪽)이 BMW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자동차 엔진용 피스톤링을 들고 있다. 만프레트 헤네케 라이프니츠 고체상태 및 물질연구소(IFW) 소장은 “장기간 원천 연구를 자유롭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래형 산업에 필요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라이프니츠 IFW 제공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세 차례에 걸쳐 독일 동부 드레스덴에 4000여 t의 폭탄을 투하했다. 2만5000여 명이 희생됐고, 중세 바로크시대의 걸작이라 평가받던 드레스덴의 건물 90%가 파괴됐다. 독일 출신인 귄터 블로벨 미국 록펠러대 교수는 199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뒤 상금 전액을 드레스덴 성당 복원에 기부했다.

하지만 1990년 통독 이후 드레스덴은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드레스덴은 전쟁의 폐허와 통일 후유증을 이겨 내고 20여 년 만에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연구소로 탈바꿈하며 유럽 최고의 ‘하이테크 수도’로 성장했다. 1990년대 1만 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2년 6만 달러를 넘어섰다. 독일 최고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드레스덴공대와 프라운호퍼연구소, 라이프니츠연구소 등 국가 연구소들이 세계 유수의 대기업, 첨단 중소기업과 협력하며 지역 경제를 굳건히 떠받친 것이 변화의 비결이다.

○ 레이저 이용해 BMW, 포드 부품 개발

“이 피스톤링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겁니다. 아주 얇은 탄소막으로 코팅해 마찰력을 줄이고 내구성을 높인 게 특징입니다.”

10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프라운호퍼 물질 및 빔기술연구소(IWS)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레손 부소장은 지름 5cm가량인 작은 링을 들어 보이며 “BMW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것으로 첨단 피스톤링 덕분에 자동차 연비가 향상됐다”고 말했다.

프라운호퍼협회는 독일 전역에 IWS와 같은 프라운호퍼연구소 66곳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 인력만 2만4000명에 연간 예산은 20억 유로(약 2조5000억 원)나 된다. 특히 예산의 40%가량은 BMW 같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과의 공동 프로젝트에서 충당한다.

드레스덴에는 IWS를 포함해 8개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있다. IWS 바로 옆 건물은 프라운호퍼 세라믹소재연구소(IKTS)로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해 산학연 협력을 강조했던 곳이다. 레손 부소장은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일은 프라운호퍼연구소의 기본 임무 중 하나”라며 “IWS는 기업과 매년 평균 500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IWS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의 레이저 기술이다. 19초가 걸리던 부품 절단 시간을 1.17초로 줄여 제작 단가를 낮추고, 볼트나 너트를 쓰는 대신 레이저를 쏘아 특성이 다른 두 금속을 마치 한 금속처럼 자연스럽게 연결해 무게를 줄이는 등 레이저 활용에서는 선두를 달린다. 레손 부소장은 “20여 년 전 ‘1호 고객’인 포드의 요청에 따라 자동차 부품 개선에 레이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며 “오랫동안 레이저 기초 연구를 진행해 원천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미래 산업 활용할 기초 연구 진행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산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라이프니츠연구소는 기초과학 연구와 산업화 연구의 중간 다리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 연구소다. 독일 전역에 라이프니츠연구소 89개가 흩어져 있고, 연간 예산은 16억4000만 유로(약 2조 원)에 이른다. 드레스덴에는 라이프니츠연구소가 3개 있다.

만프레트 헤네케 라이프니츠 고체상태 및 물질연구소(IFW) 소장은 “10년 안팎의 장기 기초 연구를 자유롭게 진행하고 있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일이 라이프니츠연구소의 의무 사항은 아니다”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기초 연구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IFW는 올해 일본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와 공동으로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스케이트보드인 ‘호버보드(Hoverboard)’를 개발했다. 호버보드 밑에 액체질소를 넣어 초전도물질을 영하 197도로 유지시키고 영구자석을 붙여 공중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게 만들었다. 헤네케 소장은 “1987년 고온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초전도 기술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며 “아직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등 산업적으로 활용하기에는 기술적인 단점이 있지만 IFW는 호버보드처럼 미래 산업에 필요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IFW와 초고강도(SHS) 소재 개발을 위해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인 이민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독일 국가연구소의 경쟁력은 수준 높은 원천 연구를 장기간 진행한다는 데 있다”며 “프라운호퍼연구소도 10∼20년간 기초 연구를 진행하고 이 연구를 기업의 요구에 맞게 변환시킨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기초연구#기업맞춤형#bmw#도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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