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에 음수대를… 수돗물 불신 직접 씻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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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이 환경이다]<下>수돗물 살리기 7대 제언

수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믿고 직접 마시는 사람은 100명 중 5명뿐인 한국의 수돗물.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국민을 탓하기 전에 정부나 공공기관부터 수돗물 마시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수돗물을 믿고 마실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지속적인 관리도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윗물이 모범 보여야

18, 19일 이틀간 본보의 ‘수돗물이 환경이다’ 기사가 나간 뒤 누리꾼 사이에서는 정부, 국회, 공공기관 등 세금을 쓰는 곳부터 수돗물 마시기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올해 4∼8월 수돗물시민네트워크가 전국 광역지자체와 중앙부처, 국회, 대법원 등 32곳의 수돗물 음수대 설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8곳에만 수돗물 음수대가 있었다. 상수도 수질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환경부도 지난달에야 뒤늦게 음수대를 설치했다.

현재 공공기관 내 수돗물 음수대 설치 확대를 조례로 정한 지자체는 전국에서 서울시와 경기도뿐.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행사나 회의에 페트병 생수 반입을 제한한 곳은 경기도가 유일하다. 김동근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다른 부처나 지자체들도 수돗물 음수대를 확대하고 페트병 생수 반입 제한 등 수돗물 마시기 활성화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및 도지사 등 선출직과 고위직 공무원부터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는 의견도 같은 맥락이다. 수돗물을 국민에게 권하기 전에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들이 몸소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회의, 국정감사, 국회에서는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관에서도 수돗물만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청사 곳곳에 수돗물 음수대가 설치돼 있는 데다 공관에서도 수돗물을 그대로 받아 마신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 강력한 의무화 도입

언제 어디서나 수돗물을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광장,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쉽게 수돗물 음수대를 이용할 수 있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 수돗물 음수대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돗물 음수대 자체도 많지 않은 데다 있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 중 수돗물에 대한 투자가 가장 활발한 서울에서도 수돗물 음수대는 지난해 말 기준 1147개로 동(洞·서울시 동 288개)당 평균 4개 수준이다. 서울 면적의 6분의 1 수준인 파리 공공음수대가 1200개인 것과 비교하면 큰 격차다.

각 가정 내에 수돗물 음수대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바로 물을 마시는 게 꺼림칙하다는 불만을 해소하고 수돗물을 정수기 물처럼 편리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올해 2월 서울시는 민간 건설사인 코오롱글로벌과 손을 잡고 2017년 완공되는 아파트 단지 내 가구에 붙박이 형태의 수돗물 음수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아파트 설계 단계부터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한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불신 없애고 동참 유도

물탱크, 배관 문제 같은 수돗물 불신 요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행 수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대형건축물(연면적 5000m² 이상 건축물 등)에 설치된 물탱크는 6개월에 한 번씩 청소해야 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소형건물축 물탱크 청소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조례를 개정해 소형건축물 물탱크 청소를 의무화했지만 대다수 지자체는 여전히 건물 소유자 자율에 맡기고 있어 사실상 위생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수돗물 불신 해소의 효과적인 방안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스마트워터시티’로 선정된 아파트 단지의 수돗물 직접음용률이 4개월 만에 1%에서 19.3%로 오른 데에는 대형 전광판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주민들에게 수돗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여준 게 결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 의지다. 아무리 깨끗한 수돗물과 훌륭한 공급망을 갖췄더라도 시민에게 외면받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은 페트병 생수 대신에 개인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수돗물 음용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환경부가 댐, 정수장 설치 등 시설 투자에는 적극적이면서도 좋은 수돗물을 공급하는 일에는 관심과 의지가 부족하다”며 “중앙 정부가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가정까지 좋은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 시민 제르상드 씨가 3일 오전 출근길에 직장 바로 앞에 있는 음수대에서 개인 텀블러에 수돗물을 받고 있다. 파리=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파리 시민 제르상드 씨가 3일 오전 출근길에 직장 바로 앞에 있는 음수대에서 개인 텀블러에 수돗물을 받고 있다. 파리=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파리 시민 79% “수돗물 그냥 마셔” ▼

주요 지점 1200곳에 음수대 설치… 석회 기준치 이하로 철저 관리

“소독약 냄새나면 좋은 물” 강조… 고학력-고소득자가 더 잘 마셔


3일 오전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던 파리 시민 제르상드 씨(33·여)는 직장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고서점 앞 음수대에서 멈췄다. 어제처럼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시원하게 나오는 수돗물을 담았다.

“여기 음수대에 수질 검사 항목이 붙어 있잖아요. 아주 좋지 않아요? 돈 주고 사먹는 생수보다 낫고 플라스틱 병을 쓰지 않으니 환경에도 도움이 되잖아요. 당연히 출퇴근하면서 늘 수돗물을 떠먹죠.”

직장이 파리의 명소인 데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바로 인근이라 늘 많은 사람이 수돗물 음수대를 이용한다고 했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생수 대신 수돗물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데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일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수를 마신다며 맹비난했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수돗물엔 석회 성분이 많이 포함돼 직접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 터라 그의 말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파리시의 수돗물을 생산 공급하는 ‘오 드 파리(eau de Paris)’의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지난해 발표된 오 드 파리의 ‘소비자 만족도 조사’ 결과 수돗물만 직접 마신다는 사람은 응답자의 39%, 수돗물과 생수를 함께 마신다는 사람은 40%, 오직 생수만 마신다는 사람은 21%로 나타났다. 생수만 마시는 사람의 13%는 ‘수돗물에 석회가 많아서’를 이유로 꼽았다.

“맞아요. 석회가 시민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지만 기준치 이하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요. 석회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걸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소독약 냄새가 난다면 제대로 수돗물을 만들었단 증거고 나쁜 물질을 없애는 이로운 것이란 걸 강조하죠.”

오 드 파리 에마뉘엘 마르코비치 대외협력관의 말이다. 이곳 역시 시민이 직접 수돗물을 마실 수 있도록 선입견을 없애는 홍보 활동에 주력해 왔다. 파리 시내 주요 지점 1200곳에 수돗물 음수대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배관이 좋지 않다는 우려를 없애기 위해 2013년부터 대대적인 교체를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수돗물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탄산이 함유된 수돗물을 무료로 공급하는 시설도 시내 주요 관광지 7곳에 마련했다. 내년에는 4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특이한 점은 파리에선 소득이 높을수록 수돗물을 직접 마시고 그렇지 않으면 생수를 사먹는 현상이 있다는 것.

마르코비치 협력관은 “고등교육을 받고 소득이 높은 층일수록 환경의 소중함과 과학적인 근거를 받아들여 수돗물의 우수성을 인정하지만 난민처럼 다른 국가에서 유입된 시민이나 저소득층일수록 자국에서 먹었던 저질 수돗물에 대한 편견 때문에 파리의 수돗물까지 외면하는 현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수돗물 생산 현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고 ‘물 전시관’을 만들어 상설 전시 중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수돗물 품질이 낮다고 광고했던 세계적 생수 회사를 상대로 오 드 파리가 8년 동안 소송을 벌인 끝에 2007년 승소한 것도 수돗물 음용 비율을 높인 주요 요소로 보인다.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부 장석환 교수는 “수자원공사와 서울시에서 고도정수처리를 거친 세계 최고 수준의 수돗물을 만들고 있지만 파리처럼 시민이 피부로 그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홍보 전략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파리=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수돗물#음수대#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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