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유리천장, 열정으로 뚫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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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시아계 차별 딛고 활약… 뮤지컬 ‘왕과 나’ 한국계 3인방

올해 토니상 4개 부문을 휩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에서 한국계 배우 3인방인 루시 앤 마일스(왕비 역), 훈 리(왕 역), 애슐리 박 씨(공주 역)가 인터뷰하고 있다(왼쪽부터).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올해 토니상 4개 부문을 휩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에서 한국계 배우 3인방인 루시 앤 마일스(왕비 역), 훈 리(왕 역), 애슐리 박 씨(공주 역)가 인터뷰하고 있다(왼쪽부터).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한국인 부모로부터 배운 예의범절과 성실, 겸손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습니다.”

요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잘나가는 뮤지컬 ‘왕과 나’는 한국계 배우들이 사실상 장악했다. 주인공인 시암 왕 역을 맡은 훈 리(한국명 이동훈·42), 왕비(티앙) 역의 루시 앤 마일스(32), 인질로 끌려온 비운의 공주(텁팀)를 연기하는 애슐리 박 씨(24)가 모두 한국계 미국인. 17일(현지 시간) 오후 공연장인 링컨센터 비비언보몬트시어터에서 만난 이들 3명은 한국적 가치와 한국에 대한 애정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은 늘 가깝고 친숙한 존재입니다.”(마일스 씨)

“(한국인)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성실과 열정이 나를 이끄는 큰 힘입니다.”(리 씨)

“한국 TV 시청을 너무 좋아합니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요.(웃음)”(박 씨)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를 둔 마일스 씨는 6월 ‘공연예술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한국말로 “엄마, 나 어떡해”라고 말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계가 토니 연기상을 받은 건 그가 최초다. ‘왕과 나’는 이 상을 포함해 토니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명문 하버드대 출신 배우로 유명한 리 씨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최초의 한국계 남자 주연이다. 그는 “부모님은 처음엔 내가 변호사, 의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갖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내 열정을 이해하신다. ‘안정’을 포기한 대신에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려는 한국인 배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면 어떻게든 대본을 철저히 공부하고 이해해야 한다. 또 끊임없이 (발음) 연습해서 미국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일스 씨는 “한국에서 한국 관객을 상대로 한국어로 뮤지컬 공연을 하는데 발음이 어눌하면 관객이 감동하겠는가. 브로드웨이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많았다.

“수없이 오디션을 봤지만 제작자들은 (소수계인)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어요.”(마일스 씨)

“옆을 보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어져요. 열심히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박 씨)

“(배우를 선택하는 제작자 등) 남의 시선은 내가 바꿀 수가 없어요. 내 삶의 기준을 스스로 잡아야 합니다.”(리 씨)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아시아계가 느끼는 ‘유리 천장’ 같은 게 존재한다”며 “능력 있는 아시아계 배우는 많은데 맡을 배역이 많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중에서 아시아계 비중이 높아져야 아시아계 배우의 기회도 많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브로드웨이#유리 천장#왕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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