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지금 영구 처리해야… 다음 세대에 책임전가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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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환경공단 ‘방폐물 안전관리 국제심포지엄’ 경주서 열려

16∼18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열린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로리 스와미 캐나다 온타리오전력 부사장(앞줄 왼쪽), 이종인 한국원자력 환경공단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세계 9개국의 방폐물 전문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심포지엄을 마친 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원칙과 국제협력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16∼18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열린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로리 스와미 캐나다 온타리오전력 부사장(앞줄 왼쪽), 이종인 한국원자력 환경공단 이사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세계 9개국의 방폐물 전문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심포지엄을 마친 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원칙과 국제협력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 사용후핵연료의 영구 처분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법령을 정비하고 국제공조를 통한 안전성 확보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16∼18일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개최한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에서 세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강조하며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심포지엄은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속 원자력기구(NEA), 해외 방폐물 관리 전담기관 등 9개국 12개 국제기관의 사용후핵연료 관련 전문가와 환경단체, 주민, 학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 “방폐물 영구 처분 방법에 지금 합의해야”


심포지엄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에 대한 전문가 컨센서스(‘경주 컨센서스’)를 17일 발표했다. IAEA 사용후핵연료 관리 원칙 등을 골자로 한 7개 항목으로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의 자국 책임 관리 △연구개발을 포함한 포괄적 다자간 국제협력 △중간저장시설의 안전 운영 확인 △저장 및 영구 처분 관련 과학 기술 개발 및 국제적 정보 교류 △과학자 및 기술자 육성 △대국민 신뢰 향상 및 투명성 제고 △안전, 과학, 윤리 등을 고려한 포괄적 접근 등에 합의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관리기술 개발’ 등 두 가지 주제가 집중 논의됐다.

이레나 멜레 IAEA 특별자문위원은 16일 기조연설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원전 441기가 운영 중이며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은 약 34만 t에 이른다”며 “지금처럼 저장만 하는 건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영구 처분 방법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적당한 부지를 찾고 사회적인 합의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며 “IAEA가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내년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하 약 500m 깊이의 심부 암반에 영구히 격리하는 심지층 처분 방식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판단하고 있다.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는 이미 심지층 처분장 용지 선정을 마쳤다. 특히 핀란드는 최근 정부로부터 건설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내년 말 착공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폴 미농 OECD 부속 NEA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장은 “시민사회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협의와 참여 과정에서 의미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장순흥 한동대 총장도 “지역사회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안전기준과 중장기적인 연구계획이 명확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 위해 먼저 관련 법령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스위스 방폐물 관리 기관 나그라의 스트라티스 봄보리스 국제협력본부장은 “스위스의 원자력에너지 법안은 모니터링 시스템부터 저장시설, 처분 과정, 운송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포함해 주민이 관련 시설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에서는 해외 전문가와 대학생들의 만남의 시간이 마련됐다. 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오창환 전북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해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수립, 추진 경험 및 국민 수용성 확보에 관해 토의하기도 했다.

○ 한국도 2024년 방폐물 포화

한국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각 원전의 임시저장고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 있는데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이면 모든 저장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안에 대한 각계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간자문기구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했다. 공론화위원회는 20개월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6월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공론화위는 2051년까지 처분 시설을 건설해 운영하도록 권고했다. 이를 위해 지하 500m의 지하연구소 부지는 2020년까지 선정하고 2030년부터는 실증연구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과 지하연구소가 들어서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민 참여환경감시센터(가칭) 설치 △유관기관 유치 △자연을 최대한 보존한 도시개발 계획 등 안정적 경제기반 구축 지원도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정부는 이 권고안을 존중해 7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올해 말까지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정부는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의 검증을 거쳐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전망, 포화 시점 등을 산정하고 처분 이전까지 사용후핵연료 보관을 위한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 확충, 지하연구소 및 처분 시설 확보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운반, 처분 기술 개발과 독성과 부피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 로드맵을 수립할 계획이다. 추가로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지역과 영구처분장 유치 지역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지 선정 방식과 보상 지원, 추진 체계와 조직, 재원 확보 등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사용후핵연료 특별법’(가칭) 등 관련 법령도 정비할 계획이다.

이종인 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며 “서둘러 기본계획과 법령을 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이해와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폐장 유치지역 개발은 보상 차원 아냐… 프랑스 국민, 연대책임 의식 갖고 있어”▼

우주니앙 프랑스 ‘안드라’ 국제협력이사

“프랑스 영토 안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프랑스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습니다.”

16∼18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방폐물 안전관리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제랄드 우주니앙 프랑스 안드라 국제협력이사(사진)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혐오시설에 대해 보상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드라는 세계 2위의 원전 보유국인 프랑스의 방폐물 관리 전담기관이다.

우주니앙 이사는 “전 국민이 함께 전기를 쓰기 때문에 국민들이 연대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며 “해당 지역 주민들도 지역 개발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CIGEO(시제오) 프로젝트’로 불리는 프랑스 고준위 방폐장 사업은 현재 정부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2025년경 사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프랑스는 이미 1970년대에 사용후핵연료 처분 용지 선정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이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15년의 조사를 거쳐 1992년 용지를 선정한 뒤에도 △교차지역 안전성 및 적합성 판정(2005년) △지역 이해관계자 협의 및 용지 안전성 평가(2009년) △정밀조사(2010년) △공개토론(2013년) 등의 과정을 거쳤다.

우주니앙 이사는 “1991년 고준위폐기물 연구법을 제정한 뒤 오랫동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해 사업에 대한 신뢰를 구축했다”며 “지역민에게 통보 혹은 이해를 구하는 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사업 추진 자체를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관점에서 진행했다”고 강조했다.

수도, 전력, 의료, 교통시설 확대 등이 용지개발 프로젝트에 포함됐고 바이오연료 시설 등 지역 발전을 위한 개발사업도 함께 추진됐다.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지역 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도 포함됐다. 숲의 형태를 보존해 달라는 지역주민의 요구를 반영해 시설의 위치를 바꾸기도 했고 100그루의 나무를 잘랐다면 100그루의 나무를 다른 곳에 심는 방식으로 자연을 보존하면서 진행했다.

우주니앙 이사는 “주민들은 직접 또는 대표, 의회를 통해 중요한 단계에 참여하고 있고 오픈데이, 환경관측소 등을 통해 진행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에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주=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사용후핵연료#방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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