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혼쭐낸 홍콩, 김판곤 감독의 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5시 45분


김판곤 감독은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에서 약체 홍콩대표팀을 조 2위에 올려놓으며 최종예선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김판곤 감독은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에서 약체 홍콩대표팀을 조 2위에 올려놓으며 최종예선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중국엔 지지 말자”…무승부로 조 2위 수성

‘홍콩을 위해 죽자(Die for Hong Kong)!‘

1만2000여 관중이 운집한 17일 홍콩 몽콕스타디움. 축구보다는 경기장 인근의 꽃시장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이곳에선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다윗’ 홍콩이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7차전에서 ‘골리앗’ 중국과 0-0으로 비겼기 때문이다. 4승2무1패(승점 14)가 된 홍콩은 6전승의 카타르에 이어 조 2위를 지켰고, 중국은 3승2무1패(승점 11)로 3위에 머물렀다.

1997년 영국에서 반환된 홍콩은 중국에선 먼 남쪽 작은 도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의 바람과 달리 국제축구연맹(FIFA)은 홍콩을 별도의 정식협회로 인정했다. 홍콩은 독자적으로 대표팀을 꾸려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국제무대에 꾸준히 출전해왔다.

당연히 양측의 감정이 좋을 수는 없을 터. 중국의 괄시에 말 못할 설움을 겪던 홍콩의 구겨진 자존심은 축구로 활활 타올랐다. 한국인 지도자 김판곤(46) 감독의 힘이다. 2009년에 이어 2012년 다시 지휘봉을 잡은 그는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까지 겸임하며 홍콩축구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체계적이고 안정된 축구발전을 위해 정부에서 인력과 인건비를 지원하는 ‘피닉스 프로젝트’를 기획·실행한 것도 김 감독이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단위 1차 계획이 끝났고, 올해 초 5년 연장된 2차 계획이 진행 중이다.

18일 연락이 닿은 김 감독의 목소리에는 힘이 가득했다. 이미 충분한 성과를 냈다. 6월 2차 예선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홍콩의 최대 목표는 3승1무였다. 그러다 9월 3일 중국 원정에서 0-0으로 비기자 계획을 조 2위로 수정했다. “최소 중국에는 지지 말자. 자랑스러운 아빠, 아들이 되자”는 메시지에 제자들이 똘똘 뭉쳤다.

홍콩의 국가관은 투철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중국’이 화두로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이 먼저 건드렸다. 첫 만남을 앞두고 홍콩을 무시하는 내용의 포스터들로 자극했다. 금세 불이 붙었다. 뿔이 난 홍콩에 대륙은 혼쭐이 났다. 축구인기가 치솟았고,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며 두둑한 수당을 약속하자 대표팀의 사기도 크게 올랐다. 킥오프 직전 선수들이 외치는 “다이 포 홍콩”이 현지 팬들의 슬로건이 될 정도로 열기가 굉장하다. 김 감독은 “자존심 강한 한국인의 기질을 느꼈다. 실력은 걸음마 수준이라도 그 이상의 가치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홍콩의 최종예선 진출은 장담할 수 없다. 2차 예선 8개조의 각조 1위는 자동진출권을 얻지만, 2위 8개국 중에선 상위 4개국만 최종예선에 오를 수 있다. 5개국이 경합하는 C조에서 홍콩은 중국보다 1경기를 더 치렀다. 중국이 남은 2경기를 다 이기면 순위가 바뀐다. 그래도 김 감독과 홍콩은 희망을 품고 있다. 김 감독은 “내년 3월 카타르 원정이 최종전이다. 2019년 아시안컵 출전권을 생각하면 최대한 많은 점수를 따야 한다. 사력을 다해 2위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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