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찜찜해서…” 수돗물 불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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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5년차 직장인 김대리 씨(33)는 일어나자마자 냉장고로 향해 보리차 한 잔을 들이켰다. 아침 식사는 북엇국. 해장을 위해 국물까지 비웠다. 한때 정수기를 썼지만 유지 관리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김 씨는 정수기 렌트 기간이 끝난 지난해부터 보리차를 끓여 마시고 있다.

오전 8시10분 김 씨는 회사 인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 전 이곳에서 커피를 산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의가 1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상사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김 씨는 입이 말랐다. 자리 앞에 놓인 500mL 페트병 생수를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다 비웠다.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 김 씨는 숙취 탓인지 국물에 자꾸 손이 갔다. 냄비 바닥이 드러난 뒤에야 숟가락을 내려놨다. 입에 남은 짠맛을 없애려 물 두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아이스커피를 사 마셨다.

식곤증이 몰려오는 오후 2시30분. 김 씨는 졸음을 쫓으려 봉지 커피를 정수기 물에 타 마셨다. 거래처 가는 길에는 편의점에서 페트병 생수를 샀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개인 텀블러에 들고 다니려고 해봤지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녔다. 그렇다고 수돗물을 그대로 마실 수도 없지 않은가.

저녁에는 삼겹살 회식. 고기를 다 먹은 김 씨는 후식으로 나온 물냉면을 깨끗이 비웠다. 이날 그가 마신 술은 소주 1병. 평소 주량이지만 어제 과음한 탓에 취기가 올라 물 4잔을 틈틈이 마셨다. 귀가 길에 숙취 해소를 도와준다는 음료를 사 마셨다. 집에 도착해 보리차 한 잔을 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김 씨가 마신 물 가운데 수돗물은 얼마나 될까.

● 당신은 이미 충분히 마시고 있다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서울 부산 대구 등 8개 광역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11개 기관은 2013년 말 전국 성인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수돗물 만족도를 조사했다. 김대리 씨는 이 조사결과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인물이다.

김 씨가 이날 마신 물(총 5678mL) 중 수돗물은 2750mL로 약 절반 수준이다. 김 씨는 집에서 수돗물을 끓인 보리차 2잔(400mL)을 마셨다. 수돗물 만족도 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5명(53.6%)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거나 끓여 마신다고 답했다. 여기에 김 씨가 마신 커피 두 잔(700mL)과 세 끼 식사를 통해 섭취한 수돗물은 2350mL. 실제 식당에서 음식을 조리하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내릴 때 수돗물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 10명 중 8명(77.5%)은 국이나 찌개, 밥을 조리할 때 수돗물을 쓰고 있다.

하지만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사람은 국민 100명 중 5명(5.4%) 꼴로 미국(56%), 캐나다 (47%), 일본(33%)에 비해 턱없이 낮다. 상당수가 김 씨와 마찬가지로 이미 알게 모르게 충분히 많은 수돗물을 마시고 있지만 정작 직접 마실 때에는 수돗물을 믿지 못해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를 이용하고 있다. 수돗물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탓인데 전문가들은 “믿고 마셔도 된다”고 입을 모은다.

● 수돗물 불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정수장 수돗물은 깨끗해도 배관이 엉터리다?=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배관이다. 정수장에서 생산된 깨끗한 수돗물도 긴 배관을 타고 오면서 각종 불순물이 섞여 수질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다. 수돗물 만족도 조사에서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로 ‘물탱크와 낡은 수도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이 30.8%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한국수자원공사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지역의 상수도관은 이미 상당 부분 교체됐거나 현재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해 말까지 전체 상수도관 1만3721km 중 96.6%에 해당하는 1만3252km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올해 목표량인 72km구간에 대한 교체 작업도 이달 말 끝난다. 나머지 397km구간은 2018년까지 교체를 끝낼 예정이다.

지자체가 직접 교체할 수 없는 아파트, 주택 등 공동 주택의 물탱크와 옥내 급수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서울시는 2007년부터 옥내 노후 급수관(1994년 4월 이전에 지어진 주택 대상)교체 공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교체 대상 67만1000가구 중 19만4592가구를 교체했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모든 옥내 노후 급수관의 교체를 끝내기 위해 최근 공사비 지원액을 기존 50%에서 80%까지 올렸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 60곳에 물탱크를 거치지 않고 상수도관에서 바로 물을 공급하는 가압직결급수를 도입하기도 했다.

②상수원 오염돼도 마실 수 있나?=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로 국민 10명 중 3명(28.1%)은 상수원 오염을 꼽았다. 평상시에는 괜찮아도 상수원이 오염되면 수돗물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지난 몇 년 동안 녹조가 생기는 날이 잦아지고 ‘녹조 라떼’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상수원 수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녹조는 수면에 생기지만 식수 취수는 통상 수심 4미터 부근에서 이뤄진다. 또 오존과 숯을 이용한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거치면 조류의 독성물질은 물론 냄새까지 제거할 수 있다. 서울시는 현재 6개 정수장 전체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국 22개 지자체의 상수도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도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늘리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정수장에서 수질 검사를 해 통과하지 못한 수돗물은 절대 공급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녹조로 인해 수돗물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③수질이 못하고 맛이 없다?=수돗물의 수질과 맛이 페트병 생수나 정수기보다 못하다는 편견도 있다. 국민 10명 중 2명은 수돗물을 기피하는 이유로 ‘이물질과 냄새’를 꼽았다.

수돗물은 정수장에서 최대 250개 항목에 대한 검사를 통과해야만 각 가정으로 공급된다. 법정검사 항목(59개)보다 까다롭게 관리되고 있다. 장기 보관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페트병 생수나 철저한 유지관리가 필수적인 정수기보다 오염에 덜 취약하다는 장점도 있다.

수돗물 냄새는 정수 처리된 물이 다시 오염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입하는 염소 때문이다. 과거 정수장에서만 염소를 주입했고 긴 배관을 거치면서 휘발되는 양까지 감안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의 염소를 넣는 바람에 수돗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관 중간마다 염소를 다시 주입하는 시설을 설치한 덕분에 불필요하게 많은 양을 넣을 필요가 사라졌다. 또 오존 소독과 숯을 활용한 고도정수처리시설에서는 조류가 유발하는 냄새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수된 수돗물은 실제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서울시가 2012, 2013년 7차례에 걸쳐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물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수돗물이 가장 맛있는 물로 꼽힌 게 6차례다. 2013년 8월 강서수도사업소(고도정수처리). 음수대 아리수 268표(32.25%), 국내생수(35.26%), 정수기물 270표(32.49%)를 받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생산한 수돗물은 2012년 열린 ‘제22회 세계물맛대회’에서 32개국 중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톱7’에 올랐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과거 수돗물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을 일반화하다 보니 여전히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크게 남아있는 것 같다”며 “과거와 달리 지금 수돗물은 많이 달라졌고 각 업체나 관련 협회에서 그 수질을 관리하는 페트병 생수, 정수기보다 적어도 안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호경기자 whalefish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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