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무슨 일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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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건물을 멀쩡하게 지어놓고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문을 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지난해 5월 부산 남구 대연동 당곡공원에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준공됐다. 총 522억 원이 들어간 역사관은 7만5465m²의 땅에 지하 4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계획했던 광복 70주년 광복절 개관을 넘긴 채 다음 달 10일 세계인권의 날 개관 예정이라고 16일 발표하자 “문을 열긴 여느냐”며 부산 시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역사자료 전시 및 체험 공간으로 건립된 이 역사관은 2004년 제정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추진됐다. 타당성 조사와 연구 및 설계용역을 거쳐 2010년 10월 착공됐다.

부산에 역사관이 들어선 데는 일본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조국 땅을 마지막으로 밟았던 곳이자 광복 후 첫 귀향의 땅이었기 때문. 당초 역사관은 2012년 12월 준공 예정이었다. 사업 주무 기관인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착공 당시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관광 역사의 명소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에 서운함을 가졌던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은 일제히 환영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예산 확보가 제대로 안 되면서 개관은 고사하고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14년 5월 15일 준공됐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는 역사관을 운영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2012년 3월 설립하고 피해자 유족단체를 중심으로 재단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행정자치부(당시 안전행정부)는 유족 31명을 준비위원으로 위촉했다.

문제는 재단 임원 선정을 놓고 준비위 측과 행자부가 갈등을 빚으면서 개관도 덩달아 물 건너갔다. 임원을 선정한 뒤 행자부의 승인을 받으려고 버틴 준비위와 자체적으로 임원을 임명한 행자부가 준공 바로 뒷날인 지난해 5월 16일부터 소송전에 돌입한 것. 올해 2월 1심에서는 준비위가 승소했고 9월 2심에서는 행자부가 승소했다. 진행 중인 상고심 대법원 판결은 다음 달 중순경 나올 예정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면서 국유재산 등록은 1년이 지난 뒤 마쳤다. 지난해 7월 채용된 역사관 신규 인력 10여 명은 합격 통보를 받고도 발령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위원회는 법상 존속기간을 6차례(3년)나 연장했다. 개관 지연으로 추가된 관리비만 6억5000만 원이었다.

위원회 관계자는 “건물 하자 보수공사 등으로 개관이 늦춰졌다”며 “시운전 기간이었다”고 변명했다. 강의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부산지부장(73)은 “방치된 역사관을 보면 강제동원으로 희생된 아버지의 원혼이 떠도는 것 같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광복 70년이 흘렀지만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일본은 오히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개관이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주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용휘 부산경남취재본부장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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