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달 규모 커지는데 국책 연구기관 하나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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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1조… GDP 7.2% 차지… 민간 조달硏, 공익활동에 한계

2013년 나라 전체를 뒤흔든 원전 비리. ‘유착과 비리’로 얼룩진 이 사건은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친 피해액만도 9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방산(防産)비리는 국민 혈세 낭비는 물론이고 국가안보망에도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이 같은 비리가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공조달 운영 체계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가계약과 지방계약의 이원화 운영, 국방조달의 개별적 운영,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계약사무규칙에 의한 별도 운영 등이 이런 문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체 공공조달 및 공공계약 프로세서 최적화를 위해 조달정책을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분석 및 평가할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커가는 공공조달, 선제적 대응은 미비

16일 조달청에 따르면 국내 공공조달 시장 규모는 2010년 104조4000억 원에서 2012년 106조4000억 원, 지난해에는 111조5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의 7.2%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 등 기존 계약심사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원자력발전과 방위산업 분야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듯이 조달의 공정성 제고에 대한 국민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즉, 원전 부품이나 국방장비를 수요기관의 기술수준에 맞추되 조달 과정에서 공공성과 투명성, 객관성을 갖추기 위한 과정이 연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조달시장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환경 변화에도 기인하고 있다. 과거의 경우 공공조달은 예산 운영 위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산업정책, 사회복지정책 등 효율적인 재정운영의 전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최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경기 위축과 고용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공공조달을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 활용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예산의 효율적 운영과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기반 구축 등을 위해 선제적이고도 장기적인 조달정책 연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민간 차원의 조달정책 연구는 한계

국내에서는 2005년 설립된 민간기구인 ‘한국조달연구원’이 공공조달 분야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으나 자체 운영을 위한 용역수주 등 수익사업에 급급한 실정이다. 이른바 ‘생계형조직’으로 공정한 조달제도 및 정책입안 등 공익적 성격을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인력도 16명(박사급 8명)에 불과해 커지는 공공조달의 중요성에 부응하기에는 역량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로부터 보조금 출연금 등을 지원받으면서도 안정성과 독립성을 부여받아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정부 차원의 기구 설립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청과 관세청, 특허청의 경우 각각 중소기업연구원(1993년 설립), 국제원산지정보원(2008년), 한국지식재산연구원(2005년) 등 전문연구기관이 국가에서 요구하는 주요 정책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달청은 기획재정부와의 논의를 거쳐 조달분야 법정전문연구기관인 ‘한구조달정책연구원’의 설립을 원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강석훈
의원(새누리당·서울 서초을)도 이를 입법 발의한 상태다. 정재은 조달청 기획재정담당관은 “공공조달은 이제 국가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정도로 규모와 내용면에서 확대되고 있다”며 “특정 이해관계 없이 공정한 조달제도 및 정책 입안을 위해 공익적 성격을 갖는 법정 전문연구기관의 설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정부도 필요성 인식… 국회에 의견 제출” ▼

김상규 조달청장

“국내 공공조달의 시장 규모와 역할을 감안하면 한국조달정책연구원의 설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통령과학기술비서관, 지역발전비서관,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과 재정업무관리관 등을 두루 거친 김상규 조달청장(사진)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실천과제가 하나 있다. 기존 민간기관인 한국조달연구원을, 정부에서 보조금이나 출연금을 지원받아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법정 전문연구기관(한국조달정책연구원)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국내 공공조달 시장의 규모와 기능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조달 정책에 대한 조사, 연구, 분석, 평가 등을 담당하는 전문 국책연구원조차 하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김 청장은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인 특허청과 관세청, 중소기업청의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국제원산지정보원, 중소기업연구원 등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며 “기획재정부도 전문연구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인식해 국회에 의견을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자립 운영 중인 한국조달연구원을 활용하면 전문연구기관 설립에 따른 예산 소요도 많지 않다”며 “공공조달 정책을 국가 경제발전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 청장은 정부기관 신설 및 확대에 대한 따가운 여론에 대해 “법정 연구기관이 설립되면 퇴임한 조달청 직원들은 오히려 거기(한국조달정책연구원)에 들어가는 게 ‘관피아’ 논란으로 더욱 어려워진다”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공공조달#국책연구기관#공익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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